일본서기의 정체 (2001.05.06) 조선일보
“일본 건국기념일이 언젠지 알아?”
이렇게 물으면, 우리나라 사람의 태반은 볼멘 소리를 낸다.
“몰라. 그건 알아 뭘해!”
그러나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일본 정치 권력자들의 역사 의식을 읽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건국기념일은 2월 11일이다. 근거는 ‘일본서기’에 있다.
820년에 간행된 이 일본의 관선 정사서에 의하면, 초대왕은 신무다. 신무왕은 기원전 660년인 ‘신유년 음력 정월 초하루에 즉위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해 그 날의 양력 날짜를 따져보니, 2월11일이어서 건국기념일로 삼은 것이라 한다.
‘일본서기’는, 왜 하필이면 기원전 660년의 신유년을 신무왕 즉위일로 설정했을까.
간지는, 갑 을 병 등 10간과, 자 축 인 등 12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60년 1원’을 가리킨다.
따라서 ‘신유년’도 60년마다 돌아온다. 이것을 굳이 기원전 660년의 신유년으로 설정한 데는, 일본사를 한껏 늘여보자는, 주변국에 대한 ‘경쟁의식’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고구려의 건국은 기원전 37년, 백제는 기원전 18년, 신라는 기원전 57년…. 이 삼국의 건국 연대보다는, 한층 오랜 역사를 뽐내야겠다는 후진 콤플렉스의 소산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일본 학자 중에는, 고대 중국의 참위설(음양 오행설에 의해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학설)에 보이는 ‘신유 혁명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간지 60년을 1원으로 잡으면 21원은 1260년. 이 21원의 첫머리 신유년에 대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 ‘신유 혁명설’인데, ‘일본서기’의 편찬자는 601년의 신유년에서 역산, 그 1260년 전 신유년을 신무왕의 즉위년으로 삼았으리라는 것이다. 신무왕의 즉위야말로 일본이 ‘신의 시대’를 마감하고 ‘인간의 시대’로 접어든 혁명으로 치부했을 것이라는 데….
왜 하필이면 601년을 기점으로 삼았느냐는 것도 의문이다.
백제 법왕(원래는 고구려인이었다는 설도 있다)으로 추정되는 성덕태자가, 일본 중부지방 이카르가에 처음으로 궁을 세운 때가 이 해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일본 최초의 국법이라는 ‘헌법 제17조’라는 것을 이 성덕태자가 제정했다는 해는 그 3년 후인 604년이다.
이같은 상황은 모두 새 정권의 스타트를 암시한다. 백제계 내지는 고구려계 인물의 일본 중부권 진출을 뜻하는 또 하나의 ‘혁명적 사건’이 이 무렵에 일어났다는 것일까.
어떻든 이 7세기 초의 신유년을 기점삼아 일본의 소위 초대왕 신무의 즉위년은 산정되었다. 요컨대, 어림셈이다.
일본 건국기념일은, 이 상상적 어림셈에서 추려진 날짜다. 명치 5년(1872)에 ‘기원절’이라는 이름의 개국 축일로 삼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 폐지, 1966년엔 아예 ‘건국기념일’로 정해버린 것이다.
일본의 숱한 역사학자들은 역사적 근거가 분명치 않은 이 건국 기념일 제정을 극력 반대했지만, 정부는 전문가의 의견을 뭉개고 제정을 강행했다.
초·중·고교 교과서 검정을 에워싼 재판으로 유명한 사학자 이에나가 사브로(당시 동경교육대교수)씨도 그 반대론자의 한사람이었다.
1967년에 간행된 역주본 ‘일본서기’(암파서점간)의 해설을 맡아쓰기도 했던 이에나가씨는, 이 해설을 통해 교과서 검정과 건국기념일의 부당성을 역설하면서, “앞으로 ‘일본서기’ 연구에 있어서는, 정치권력과 그 주구에 의한 진실의 왜곡을 단호히 거부하는 강인한 과학정신을 갖추어야 하는 동시에, 여러 영역의 연구성과를 종합하기 위한 전문가 간의 협력이 절실히 요망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본서기’에 대한 우리나라 학자의 연구도 그새 적지않았다. 만 1년에 걸쳐 연재해온 이 ‘속 노래하는 역사’ 또한, ‘일본서기’를 우리나라 시각에서 통틀어 뒤집은 문제 제기다. 읽는 이가 지루하지 않도록 소설 형식을 빌려 엮었으나, 역사의 뼈대까지 창조한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황당히 여겨질지도 모를 ‘고구려 연개소문·일본 천무왕 동일인설’과, ‘신라 문무대왕·일본 문무왕 동일인설’도 단단한 근거가 있음을, 글을 마치며 밝혀 둔다.
우리의 역사책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일본서기’를 비교 검토하는 한편, 7세기 후반에 주로 읊어진 4516수의 일본 고대가요 ‘만엽집’을 우리 고대어로 읽고 맞추어 보면, 이같이 놀라운 결론이 추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신무는 누구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신무왕은 천무왕의 또 하나의 얼굴이다. 천무 연개소문이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망명, 중부권으로 세력을 키워나갈 때까지의 에피소드가 ‘일본서기’ 신무기에 서술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서기’는 천무 10년(681)에 편찬되기 시작했다.
정권을 탈취한 자는,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으레 자신을 미화하는 역사 날조를 꾀한다.
‘일본서기’ 편찬도 천무의 일가권속을 미화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칭송 일변도로 역사를 꾸릴 수는 없다. 어둡고 참담한 사실을 깡그리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명의 가공의 왕이 만들어져, 천무의 에피소드가 그 여러 왕의 이야기인양 두루 배분되어 쓰여졌다.
초대 신무왕기에는 망명 초기의 얘기가, 제2대 수정왕기에는 라이벌 천지를 암살할 때의 얘기가, 제14대 중애왕기에는 천무가 죽음에 이르는 사건 전말이 소상히 서술되어 있는 한편, 정작 천무왕기에는 당시의 사무적인 기록 위주로 엮어져 있는 것이다.
천무의 왕비 지통의 일생도 분산 수록되어 있다. 천무 암살을 묵인하는 등, 차마 그대로 적을 수 없는 부분은 신공왕후기에 밀어 제쳐져 있는 형편이다.
문무대왕 이야기는 제15대 응신과 제22대 청녕왕기에, 제38대 천지왕 이야기는 제12대 경행왕기에 분산되어 있고, 제36대 효덕왕 이야기는 제19대 윤공왕기에 각각 나뉘어져 실려 있다.
그런가 하면 응신왕기에는 5세기초 일본에 밀어닥친 백제계 엘리트들의 얼굴도 포개어져 있다.
한 인물의 사연이 여러 인물의 이력으로 쪼개어져 분산 수록되어 있는 한편으로, 한 인물의 얘기 안에 복수의 인물 얘기가 포개져 실려 있는 복합구도. ‘일본서기’는 이렇게 쓰여진, 복잡괴기한 대하 논픽션이다.
이 역사책에는, 실은 7세기 후반 동북아시아의 격동기에 부침한 권력자들의 대결 상황이 주로 다루어지고 있다. 7세기 후반의 일본 고위관료와 일본 왕족들에 의해 읊어진 노래 ‘만엽집’이, 일본사 연구의 키워드 노릇을 해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이두로 적혀 있는 이들 노래를, 하루 빨리 우리의 힘으로 완독하자. 이것이, 일본인들의 역사왜곡을 원천적으로 바로 잡는 튼실한 길이다. < 끝 >
(이영희ㆍ작가)
■이영희 교수는… 1931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다. 한국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11대 국회의원(전국구)과 공연윤리위원장(85~88년)을 지냈다. 대한민국 아동문학상 등 여러 아동문학상을 수상했고 ‘어린 선녀의 날개옷’ 등 동화집과 수필집 ‘살며 사랑하며’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80년대 후반 이후 한일고대사 연구에 매달려 한일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흥미진진하게 다룬 조선일보 연재물 ‘노래하는 역사 1·2’와 일본 문예춘추사에서 ‘또 하나의 만엽집’ 등을 발간했다. 현재 포항제철 인재개발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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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구려인의 기상을 받아놓고서 왜놈들은 왜 그리 비리비리 한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