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때 처음 페트리 7s로 사진에 입문한지 벌써 1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내가 처음 사진을 시작할때는 모든것이 부족한 시대(사진에서는)였기 때문에
사진을 고등학생이 시작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1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거대한 pool이 누구나 쉽게 정보를
얻게 해 주며, 심지어는 사진기술도 가르쳐 주며, 장비도 쉽게 구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지금 사진을 시작하는 이들은 참으로 행복한 이들이다. 쉽게 선인들을 따라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기능이 역기능이 아닌지 의심이 가기 시작하는 것은 나뿐일까? 쉽게 사진하는
사람들이 사진을 쉽게 생각하지 않을까? 내 경험상 사진은 어렵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에게 있어서 사진은 참으로 나를 겸허하게 해 주는 높은 산이며, 나에게 도전정신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하나의 고지이다. 뷰파인더에 눈을 올려놓고 셧더를 누르는 것이
사진의 모든 과정이지만 사진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많은 생각과 사고를 필요로 하고
또한 많은 경험도 필요로 하며, 그러기에 기본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컷 수로
계산해서, 나는 몇만컷을 찍었으니 어느정도 경지에 올랐다 할 수 없는 것이 사진이라는
말이다. 많이 찍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노력과 집중, 많은생각이 뒷받침되지 않는
컷은 안 찍는 것에 비해 못하지는 않되 안 찍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나는 부끄럽게도 여기에 감히 내 주장을 해 본다.
1. 사진의 기본은 빛과, 기계와, 렌즈를 이해하는 것.
요즘은 참 카메라가 좋다. 이러는 나도 좋은 카메라를 쓴다. 원채 내가 없이 살아서 그런지
이것저것 소유하고 수집하는 것을 즐긴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소유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하나의 기쁨이며 비록 고가의 장비를 가지고 사진을 하는 것에는
논란이 많지만 좋은 장비는 나쁜 장비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을 시도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다. 절벽에 등을 지고 있는 사진가가 어떻게 더 이상 광각을 만들어 낸단 말인가?
물론 이것이 장비에 의존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볼 것이며 그
이후에 장비를 추가하거나 교환하라는 뜻에서 한 말이다. 자신의 눈과 손과 발로 할 수 있는데
왜 장비의 기능에 의존한단 말인가? 이것은 자신의 발로 뛸 수 있는데 굳이 휠체어에 타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각설하고, 결국 자신의 기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해라는 두리뭉실한 표현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다르게 표현해 자신의 카메라와 렌즈는 어떤 상황일때 어떠한 영상을 만들어
낸다라고 하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데이터를 머릿 속에 집어넣어 두는 것이라고 말을 바꾸어
말할 수 있겠다. 나의 렌즈는 최대조리개는 얼마아고, 최소조리게는 얼마이며, 화각은 몇도
몇분과 같은 기본적인 데이터에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해서, 이 렌즈의 각 조리개
별로 해상력과 심도의 변화를 머릿속에 외우는 것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니콘의 AF50mm F1.4D렌즈는 사진을 찍지 않을 때에도 계속 만지작 거리면서 각 조리개별
해상력과 심도의 변화를 머릿속에 넣는데 주력했다. 따라서 이제는 웬만한 촬영에서는 심도
미리보기를 누르지 않고도 심도를 파악할 수 있으며 해상력 변화 특성도 몸에 익혔다. 이런것까지
기본적으로 떼면 렌즈 하나의 기본은 파악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화각의 특성을 파악해서
렌즈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갈 때의 왜곡의 변화를 몸으로 외우고, 파인더를 보지 않고도
육안으로 사진사가 바라보는 곳을 기준으로 이 렌즈가 얼마나의 풍경을 담아낼 수 있는지를
몸으로 외워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패턴노출계가 내장된 현대의 카메라들은 같은 곳을 바라보아도
기종에 따라 노출차가 꽤 많기때문에, 적정노출을 얻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휘도차가 심한 화상이거나, 역광촬영 등 노출계의 수치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는 무궁무진
하게 많다. 필요에 따라서는 측광방법을 바꿀 수 있는 카메라의 경우 측광방법도 바꿔 가면서
적절한 값을 찾아야 할 것이며, 화상의 주요 부위를 측광한 후 평균을 내는 계산도 필요할 것이다.
이런 노력을 계속하면 소위 뇌출계라고 하는 짐작노출 능력도 향상되며, 따라서 M모드밖에 없는
카메라의 경우에도 빠르게 노출을 결정할 수 있고, 결과물도 만족스러워진다.
카메라와 렌즈를 이해하는 것, 그것은 빛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2. 기본기에 익숙해지자.
나는 시력이 꽤 좋은 편이다. 시력이 좋다는 것은 사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좋은 기계를 사용하는
것 이상의 성능을 제공한다는 것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기본기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배우는 속도가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에 비해 빨랐다는 득을 보았다. 그렇다면
사진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고 말한 기본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특별한 것이 없는 것으로서
핸드헬드시 흔들리지 않는 사진을 얻는 것과, AF없이도 MF로 정확하고 빠른 포커싱을 얻는 것을
말한다. 물론 흔들린 사진은 전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그 사진을 찍었
을 때, 일부러 흔들어서 효과를 준 것인지, 아니면 그 상황에서 그 정도의 흔들림을 감수하고 찍었는
지를 말인다. 포커싱에 가서는 변명할 말도 없는 것으로, 포커싱이 정확하지 않은 사진은 사진이라고
말 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진은 구도가 생명이라고. 물론 구도가 중요하다.
엉성한 구도의 사진은 주제를 산만하게 만들며 때로는 자르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대의
일안반사식 카메라들은 대부분 화면의 중심에 포커싱을 맞추게 되어 있다. 즉 화면 가운데의 피사체
초점을 가장 잡기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습관적으로 사진인들은 포커싱을 맞추고, 그 이후에
카메라의 시점을 움직인다. 이 사실은 올바른 포커싱의 큰 적 중 하나인 코사인오차를 만들며 낸다.
포커싱을 하고 구도를 잡지 말라. 가능한 한 구도를 먼저 머릿속에 잡고, 그 구도를 찍을 수 있는
위치에 먼저 가 있는 것이 우선이다. 그 이후에 초점을 잡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당연히 AF보다
MF가 더 중요한 것일 수 밖에 없다. 현대의 렌즈 중 고가의 렌즈들은 AF 도중에도 MF조작이 가능한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이것이 단순한 기능추가라고 생각하고, 아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더라도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진 잘못배운 것이다.
사진은 예술이기 앞서 기록이다. 사진을 처음 만든 사람도 사진을 그림 대용으로 하기 위해서 사진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사진의 영역 중 예술분야갸 생긴 것이지 예술적인 사진이 사진의 전부는 아니다
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비약이 심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라면 누구나 감탄할만한 멋진
장면을 찍어낸 사진보다, 종양을 발견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린 뢴트겐 사진을 더 가치있는 것으로
주저없이 꼽을 것이다. 프로들은 필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누구나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는
편광필터조자 사용하지 않는 프로들이 많다. 이 말은, 인공적인 조작을 거친 빛보다 자연적인 빛으로
만들어 낸 사진, 즉 그 상황을 그대로 영원의 시간 속에 정지시킨 사진이야말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피사체를 찍기를 바란다면, 그 피사체가 얼마만큼 멋지게 찍힐 것인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얼마만큼 정확하고 또렷하게 찍을 것인지를 우선하라. 그게 가능한 이후에야 다른
예술적인 조작을 생각하라. 겉멋만 든 사진만큼 의미없는 것은 없다. 진한 티맥스 필름으로 찍은
미간에 주름이 진 노인의 모습의 사진이 인물사진의 다라고 생각하는가? 초현실적인 영상은 그림이나
컴퓨터 그래픽으로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왜 사진을 고집하는가? 그것은 사진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만을 담아 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게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진의 기능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물론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그림과 같은"사진을 만드는 것 또한 좋은 시도이다. 하지만 "그림과 같은"
사진만을 고집하는 것은 쓸데없는 고집이다.
3. 자기가 보유한 장비가 최고라고 생각하지 말자.
조언 어쩌구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반대의 말을 한다. 이유는? 장비 늘리지 말라는 소리일 것이다.
그럼 차라리 대놓고 그렇게 말할 할 것이지 왜 괜히 돌려 말하는가. 자기가 소유한 장비가 최고일
리가 없잖은가. 프로들이 쓰는 고가장비도 그렇고 상업/산업용 장비는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그거 쓰는 사람들은 돈이 튀어서 사는걸까? 아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 비싼건 비싼 값을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가진 장비의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자는 뜻이다. 1 Lux의 조도에서
날아다리는 파리를 FM2에 105mm 마크로 렌즈로 등배접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한 사진기도 분명 존재하기에 이 사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한 소유한 장비가 여러 대일
경우, 각 장비의 한계를 인식하여 상황에 적절한 장비를 선택하여야 한다. 스포츠 사진에 브로니 사진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 처럼 전지인화가 필요한 사진에도 135를 사용하지 않는다.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다)
이런 것들을 셧더를 누르기 전에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즘 젊은 사진인들은 렌즈 갈아
끼기가 귀찮아서 줌 렌즈를 많이 선택하는데, 물론 줌 렌즈는 편리한 것이지만 혹시 단렌즈 갈아끼는
것이 귀찮아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단렌즈 끼고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화각이 비슷하다면 단렌즈 쪽이 화질은 물론이며 렌즈 구경비가 더 우수하여 더 빠른
셧터 스피드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더 높은 한계의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줌 렌즈를 고집할 것인가? 줌 렌즈가 단렌즈에 비해 우수한 것은 단 하나, 원하는 화각을
순식간에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꼭 그 화각을 선택할 수 밖에 없고 화각선택을 위해 렌즈를 갈아 끼면
그 셧터찬스가 지나가 버리는 그런 상황에서만 줌 렌즈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그 화각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과연 수많은 셧터 찬스 중에 얼마나 되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해 줌 렌즈는 의미가 그리
큰 장비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지 줌 렌즈에 그치치 않고 자신이 소유한 모든 장비에
대하여 이러한 고찰을 한 번씩 해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셧터 찬스가 다가오면 반사적으로 그 찬스에
최적화된 장비를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장비에 대해 생각하고 연구하라. 장비의 한계는 장비의
물리적인 한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장비를 사용하는 사용자에 따라 한계가 연장됨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