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global-autonews.com/board/view.php3?table=bd_chae_war&gubun=3&page_num=1&idx=1048&keyfield=&key=글/박상원(차량상품성연구원/자동차칼럼니스트)
1. 정체된 회사
1981년의 어느 월요일. 피터 슈츠(Peter Schutz)는 회사 내의 최고간부들 40여명과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월요일의 점심식사는 매주 CEO를 비롯한 최고 수뇌부가 행하는 정기적인 행사중의 하나였다. 그 날 슈츠가 식탁을 함께 한 간부들은 연구개발 분야와 영업 분야 소속이었고, 식사중 대화의 주제는 날씨라던지 일에 대한 것 등 매우 고루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회사가 처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었고, 이에 참다 못한 슈츠가 그들에게 물었다.
“현재 우리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 중에서 고객들과 딜러들에게 달려 나가서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가슴 벅찬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식사중의 대화가 갑자기 끊겼고, 사람들은 슈츠를 쳐다보았다. 최고간부들이 격식과 형식을 차리고 함께하는 점심의 분위기를 깬 슈츠의 어색한 질문처럼, 슈츠가 회사와 함께 한 기간은 그들보다도 훨씬 적었다. 하지만 슈츠는 다름아닌 그들의 사장(CEO)이었고, 그의 질문으로 인해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몇몇 간부들이 몇 가지 소극적인 답변을 했지만 슈츠는 이미 회사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깨달았다. 회사에는 열정, 즉 신나게 일하는 분위기가 없었다. 짧게 말해, 회사의 분위기는 확실히 정체되어 있었다.
슈츠씨가 재무 표를 보지 않아도 대충 파악했지만, 이 회사는 확실히 위기에 빠져 있었다.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적자가 났었고, 이전의 CEO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회사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창업주 가문을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만들었다. 회사의 최고 역작인 제품은 단종될 예정이었다.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추락했고, 참다 못한 대주주인 창업주 가문은 결국 새로운 CEO를 찾게 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슈츠였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슈츠는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면 그에게 제안이 들어온 회사의 이름은 Dr. Inc. h. c. F. Porsche AG, 포르쉐 였기 때문이다.
2. 모두의 열정을 기반으로 한 추진력
1981년, 독일의 포르쉐 자동차는 사상 첫 적자에 빠져 있었다. 전설적인 911 차종은 단종되기 직전이었고, 포르쉐 가문의 대표인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는 이전 CEO에 의해 회사 건물에서 사무실이 밖으로 옮겨졌었다. 이런 가운데 유대계 미국인인 피터 슈츠씨가 회사에 신임 사장으로 영입되어 왔다. 베를린 출생의 그는 2차 대전중의 나찌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도미한 가족의 일원으로 이후 시카고에서 자랐으며, 일리노이 공과대학(IIT) 졸업후 공업기계로 유명한 캐터필러사와 디젤엔진으로 유명한 커민스사에서 각각 기술분야 및 영업분야를 거쳐 독일의 Kloeckner Humboldt Deutz(KHD)의 Deutz Diesel and Gas Turbine분야 최고책임자 직을 수행했다. 독일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므로 독일어 구사가 가능했고, 더 나아가 미국사람의 원만한 대인관계를 소유한 그는 독일회사에서 직원들과 격의없는 관계를 유지하였고, 훗날 독일의 가장 큰 노조인 IG Metal에서 간부를 하게 된 KHD의 노조대표와도 친구와 같은 사이를 유지했다. 캐터필러와 커민스에서의 경력에서 굳어진 그의 직원 및 고객 위주 경영은 독일 직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포르쉐에서 신임 CEO직책을 제시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간부들과의 월요일 점심식사 ‘사건’이 있은 직후, 슈츠는 회사의 경영과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도전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직원들이 자신들을 고무시키는 일을 한다는 믿음 속에서 나오는 열정적인 추진력이 필요했고, 또한 고객들도 흥분시키는 그런 일이 필요했다. 이러는 와중에 슈츠는 포르쉐의 창업자 아들이자 창업가문의 대표인 포르쉐 박사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박사님, 다음과 같은 두 개의 대안이 있다고 합시다.
첫 번째로는, 포르쉐가 보유한 모든 제품과 공장시설, 그리고 공구를 유지하되 직원을 전원 교체한다는 것과,
둘째로는, 포르쉐의 모든 직원들을 유지하되, 제품과 공장시설, 공구를 모두 교체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고르시겠습니까?’
포르쉐 박사의 답변은 이러하였다.
‘물론, 직원들을 유지하겠지요. 여보시요, 슈츠사장, 바로 그러한 상황이 2차 대전 직후의 이곳 독일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오. 모든 생산시설들과 공구들, 그리고 제품들은 전쟁 중에 파괴되었지만 사람들만 남았다오. 우리들은 함께 회사를 재건하였고 바로 그러한 경험이 우리의 조직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오.’
슈츠는 다음과 답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절차를 다시 반복할 생각입니다. 저는 회사의 문화와 직원들의 재건을 위해 직원들을 도전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제품과 생산시설의 전략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도록 하지요.’
다행히도 슈츠에게는 회사 문화와 직원들의 사기를 재건하는 데 있어서 유용한 카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모터 스포츠였다.
3. ‘승리를 목표로 하지 않는 경주란 더 이상 없다’
1981년 3월 둘 째주, 슈츠는 포르쉐 박사의 권유에 따라 미국 플로리다 주 세브링에서 벌어지고 있는 12시간 경주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그는 750마력, 820킬로그램의 포르쉐 935들이 경주하는 모습을 보고 흥분했다. 아무도 그에게 자동차 업계에게 있어서 이런 흥분되는 면이 있다는 점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슈츠는 모든 사업에게는 매우 흥분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활동들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포르쉐에게 있어서 저하된 사기를 북돋는 데 경주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했고, 슈트트가르트로 귀국한 후 포르쉐의 연구시설이 있는 바이사흐를 방문하여 회의를 소집했다. 모임의 목표는 간단했다. “경주와 관련된 아무나 10시에 식당에서 모일 것!” 모임에는 포르쉐 연구진 외에도 보쉬, 빌슈타인, 지멘스등의 납품업체들의 직원들도 모였다. 미국에서 왔다는 디젤 엔지니어 출신의 사장이 ‘왜 우리를 부른거야?’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와중에 슈츠가 플로리다에서 본 경주를 흥분하면서 묘사하자 ‘아뿔사’하는 얼굴들이 보였다.
슈츠가 모인 사람들에게 물었다.
“금년에 가장 중요한 경주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답변했다.
“그야 물론 프랑스의 르망 24시간 경주이지요. 오늘부터 62일 뒤면 시작합니다.”
경주를 위해 어떤 차를 준비하고 있느냐는 그의 질문에 포르쉐 924 터보 2대라는 답변이 나왔다.
“우리가 우승할 확률은 무엇입니까?”
“글쎄요, 사장님,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만, 우리들은 24시간 경주를 뛰기 위해 양산형 차량들을 개조하고 있습니다. 그 차량들 나름대로 잘 할 것이고, 그들 (양산차 등급)에서는 이길지도 모르지만, 완전히 경주용으로 제작된 차량들과 경쟁하는 전체 경주에서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슈츠가 답했다.
“제가 설명을 좀 하겠습니다. 내가 이 회사를 책임지고 있는 한, 우리는 어느 경주라도 승리한다는 목표없이 참가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내가 모르니, 모두들 내일 아침10시까지 그 방법을 생각해 보고 제시해주기 바랍니다.”
식당에 모인 사람들은 사장의 제안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곧 그의 말이 진심인 것을 깨닫고 삼삼오오 흩어지기 시작했다. 포르쉐 직원들의 식어가는 가슴속에서 엔진의 실린더 안에서 점화가 일어난 것에 비유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그 때가 아니었을까?
바이사흐에서의 모임 이후 포르쉐가 경주에서나 경영에서나 보여주는 회생은 가히 기적에 가까웠다. 일단 슈츠의 포르쉐사의 본격적인 경주참가 선언 뉴스는 순식간에 회사 내외로 퍼져 나갔고, 흥분된 옛 경주 선수들이 자신들을 기용해 달라고 끝임없이 전화해 왔다. 또한 양산형인 924 차종으로는 우승이 어렵다고 판단한 몇몇 직원들은 포르쉐 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던 경주차인 936차량 2대를 이용하자는 제안을 했고, 옛 917의 트랜스미션을 붙여서 62일만에 급파된 이들 차량들은 그 해 르망 경주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더 놀라운 것은 포르쉐사가 슈츠의 사장임기이던 1981년부터 1987년까지 르망에서 연달아 우승을 하는 기록을 세운다. 이러는 동안 포르쉐에게는 홍보비가 필요없었다. 거대한 경쟁자들이 쓰는 막대한 홍보비보다 르망에서 우승하는 것처럼 효과적인 무료 홍보도 없었던 것이다!
1981 PORSCHE 936 /81 D ICKX /BELL
1982 PORSCHE 956 D IKCX /BELL
1983 PORSCHE 956 D HOLBERT - HAYWOOD /SCHUPPAN
1984 PORSCHE 956 B D PESCAROLO /LUDWIG
1985 PORSCHE 956 B D LUDWIG /BARILLA /WINTER
1986 PORSCHE 962 C D STUCK /BELL /HOLBERT
1987 PORSCHE 962 C D STUCK /BELL /HOLBERT
[표 1: 연도별로 르망에서 승리한 포르쉐들과 운전자들]
하지만 포르쉐의 경주참여와 연이은 승리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성과는 그 무엇보다도 포르쉐의 문화와 직원들의 사기가 상승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승리 그 자체보다는,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일심단결된 모습이야말로 회사를 바꾸는 기폭제 역할이 된 것이고, 이것이 포르쉐가 독일의 스포츠카 회사를 넘어서 세계적인 스포츠카 회사로 도약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슈츠의 말처럼, 경주에서 이기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바로 사람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4. 목표의식의 중요성
슈츠는 어느 조직의 효율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왜 우리가 여기에 있으며,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며,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정확하고 명확한 정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 우리나라의 자동차 업계를 살펴보면, 단순히 세계적인 순위에 대한 도전 외에 자동차 업계의 종사자들이나 전 국민을 흥분시키는 일이 거의 없는 듯 하다. 이로 인하여 우리 국산 자동차란 단순히 ‘가’ 지점에서 ‘나’ 지점으로 이동시키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독일 자동차들은 장인들이 빚어낸 최고의 기계기술의 집약체처럼 비춰지곤 하고, 어쩌면 국산차와 독일차의 차이는 슈츠와 포르쉐 사람들이 보여준 정열의 유무 차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게된다.
WRC, 르망, IRL… 벤츠, BMW, 포르쉐, 아우디, 혼다, 도요타, 르노 등 왜 전세계의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경주에 참여할까? 그것은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의 용도에서 느낄 수 없는, 자동차라는 기계의 극한에 대한 도전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참가자들의 열정을 통해 자동차라는 매체에 흥분이라는 감정을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최근 기대를 뛰어넘은 우리나라 야구팀의 WBC 4강 진출에 국민들이 흥분하는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의 자동차 업계는 손쉽게 시속200킬로를 넘길 수 있는 가장 동적인 사물인 자동차를 통해서 매년 백만명이 넘는 자동차 소비자, 4백만명에 이르는 자동차 업계의 직간접 종사자, 그리고 4천만 국민들이 흥분하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탄식이 나왔다.
세계 초일류라는 단어, 그 단어가 그토록 이루기 어려운 것은 돈과 시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 그 공식에서 빠진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구성원들의 열정이라는 것, 슈츠와 포르쉐의 사례는 이를 매우 잘 대변하고 있다. 자동차 경주의 승자로 포르쉐를 복귀해 놓은 슈츠씨는 이 외에도 포르쉐의 엔지니어링 인력에 대한 타 회사의 아웃소싱 프로젝트 수주, 단종되기 일보직전이던 911의 부활 등 굵직한 일들을 해내었고 1988년 퇴임하게 된다. 그의 임기 동안 포르쉐의 전세계 판매량은 2만8천대에서 1986년 5만3천대, 매출은 8억5천만 도이치 마르크에서 37억 도이치마르크, 이익은 천2백만 도이치마르크에서 1억2천5백만 마르크로 급증하였다.
임원을 스카우트하는 독일인 헤드헌터인 디이터 리케르트씨가 GM의 부회장인 밥 루츠, VW의 CEO과 부회장이었던 다니엘 구데베르트, 메르세데스 벤츠의 사장이었던 헬무트 베르너와 더불어 전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인상이 남는 4명중의 하나로 뽑은 슈츠씨는 은퇴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 Harris and Schutz라는 회사를 설립, 강연활동을 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자서전적인 경영관련 책인 ‘The Driving Force’를 출판하였다. 책의 부제도 그답게 ‘평범한 사람들로 놀라운 결과를 이루는 법'으로 정해졌다. 본 책이 영문임에도 자동차 업계의 사람들부터 초일류를 지향하는 하는 사람들, 포르쉐의 역사와 경영에 관심있는 사람 등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