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한 의사 방치한 병원은 죽음의 집

2007.06.0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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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있었던 글이나 스팸땜시 옮김...

[특별기고]


“미숙한 의사 방치한 병원은 죽음의 집”
전 서울대병원·삼성의료원 의사의 고백

이종태 한국의료평가센터소장  

《사람을 살려야 할 정식 면허를 받은 의사가 무지와 미숙으로 ‘살인자’가 될 수 있고 병을 고쳐야 할 병원이 ‘죽음의 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


문화방송의 연속극 ‘허준’의 인기가 대단하다. 조선시대 헐벗고 병든 민중들에 대한 헌신적인 의사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매료된 것으로 보인다. 의사인 나는 이 연속극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참된 의사상’에 얼마나 갈증이 심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1991년 2월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그해 3월부터 서울대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그후 96년 2월에는 내과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고 내과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소위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사 코스’를 평탄하게 밟아왔다. 그러나 96년 3월부터 98년 2월까지 서울대병원과 삼성의료원 등 대형 종합병원에서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로 일하면서 나는 의사로서 부끄럽고 참담한 사건을 수없이 목격해야만 했다.


사람을 살리라는 정식 면허를 받은 의사가 무지와 미숙으로 ‘살인자’가 될 수 있고 병을 고쳐야 할 병원이 ‘죽음의 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지방병원에서 올라오는 환자의 ‘차트’를 보고 전국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전율을 느꼈다.


나는 동료 의사나 선후배 의사들에게 진단이나 치료가 잘못됐다는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내 환자만 돌보고 다른 환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는 편이 처세에는 나을지 모르지만 나는 잘못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물론 의사들 중에는 나의 충고를 받아들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기분 나빠 하거나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의사 사회의 침묵이 무서웠다. 의사의 실수나 잘못은 교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왕따’를 당하면서도 나는 고독한 목소리를 냈지만 침묵의 벽은 두터웠다.


결국 나는 환자를 치료하는 일선에서 물러나 서울대병원 임상의학연구소에서 6개월 정도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의사로서 한 사람의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사 사회의 무거운 침묵의 벽을 부수기 위해 혼자서라도 싸워야겠다는 각오를 한 것이다. 비록 이 길이 멀고 험할지라도 나는 포기할 수가 없다. 동료 의사나 선후배 의사들로부터 ‘너는 얼마나 잘났나”하는 손가락질을 받고 따돌림을 당할지라도 더 이상 의사들의 잘못과 무지를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증언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직접 목격하고 관련자료들을 검토한 것들이다.



양성종양을 악성종양으로 잘못 치료



97년 8월경의 일이다. 서울 강남 S병원 병동의 칠판에 ‘근상피종’이라는 진단명이 적혀 있는 40대의 남자 환자가 있었다. 근상피종은 양성종양인데 악성종양과 달리 항암화학요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종괴로 인해 장기의 기능 장애나, 증상이 있을 때 혹은 미용상 문제가 있을 때 외과에서 수술로 제거하면 된다. 그 환자는 내과에서 더 이상 치료할 필요가 없는데 내과 병동에 입원해 있기에 의아해서 담당 전공의에게 “저 환자는 왜 입원해 있느냐, 지금 무슨 치료를 하고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전공의는 지금 수술 후 보조적 항암화학요법(adjuvant chemotherapy)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 요법은 수술로 종양을 제거한 후 재발 방지를 위하여 보조적으로 하는 치료다. 현재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단위 임상연구를 통하여 그 효과가 입증된 종양은 유방암, 대장암, 직장암, 연부조직육종, 골육종 밖에 없다.


나는 담당 전임의에게 가서 따지듯이 말했다.


“지금 전공의가 양성종양 환자를 항암화학요법으로 치료하고 있다. 왜 양성종양 환자가 필요 없는 치료로 3주 마다 1주일씩 입원해서 고통을 받아야 하나. 사회생활을 못하기 때문에 겪는 경제적, 정신적 손실은 고사하고라도 항암화학요법의 부작용이 클 뿐만 아니라, 만약에 화학요법으로 인하여 백혈구가 감소해 감염으로 사망하면 어떻게 할 거냐. 빨리 담당 스태프에게 말해서 지금이라도 그 요법을 중지하게 하라.”


전임의의 대답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와서 환자에게 어떻게 필요 없는 치료를 받고 있다고 그만두자고 하느냐, 담당 전공의가 하겠다는데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


너무나 무책임한 대답에 흥분한 나는 재차 이야기했다.


“지금 중단하지 않으면 앞으로 최소한 4차례나 더 치료를 받을 건데 그러다 부작용으로 환자가 목숨을 잃으면 어떡하냐.”


그러나 전임의는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냐” 라고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뭐라고 말할 기분이 나지 않아 돌아서고 말았다. 그 전임의 말대로 환자가 모르는 게 당장은 아무 말썽이 없을 지 모른다. 그리고 대한민국 병원에서 어디 이런 일이 한둘인가 하며 자위도 해보았다. 그러나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 보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인데 치료하는 의사가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똑같은 과실을 반복한다면, 그리고 동료 의사가 이를 방관한다면 도대체 환자들은 누구를 믿는단 말인가. 나는 치미는 분노와 자괴감에 어쩔 줄 몰랐다.



과다 투여된 항암제의 독성으로 사망



96년 3월경 강북의 S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악성 림프종(malignantlymphoma)에 걸린 남자 환자가 자가골수이식술(autologous bone marrow transplantat ion)을 받던 중 상태가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사망했다. 환자 보호자들은 중환자실 창문을 부수며, 의사가 잘못하여 환자를 죽게 만들었다고 거세게 항의했다. 진료를 담당했던 병원 스태프는 보호자들에게 시달려 외래진료도 제대로 못보고 병원 내에서 도망다니고 있는 상태였다.


동료 의사들은 “열심히 치료를 해주었는데 보호자들이 이렇게 난동을 부리면 어떡하냐. 진료담당 스태프가 지금 상당히 고통을 받고 있는데 환자 보호자들이 나쁜 사람들 아니냐”고 말했다. 당시 나는 외부 파견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었다.


이후 파견근무를 끝내고 돌아와 지내던 중 그 환자를 담당했던 스태프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사건이 궁금해 조심스럽게 거론했다. 그 스태프는 “예전과 달라 환자나 환자 보호자들이 의사에 대한 고마움이나 존경심은 고사하고, 열심히 진료하다가 어쩔 수 없이 상태가 나빠지면, 난동이나 부리는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환자를 볼 수 있겠느냐”고 한탄했다. 나도 심정적으로 공감이 갔다.


그런데 얼마 후 사망한 그 환자의 의무기록지를 볼 기회가 생겼다. 의무기록지를 보는 순간 이것이 문제의 그 환자 기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자세히 검토해 보았다.


환자는 악성 림프종으로 진단 받고, 종양내과에서 항암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었다. 이후 재발해, 구제항암화학요법(salv-age chemotherapy)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항암제가 효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구제항암화학요법이란 재치료로 완치 가능성이 있을 때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재래적 항암화학요법(conven- tional chemotherapy)으로는 더 이상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에 고용량 항암화학요법(high dose chemotherapy)과 자가골수이식술을 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환자는 자가골수이식술 후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 사망했는데 의무기록지의 기록으로만 보면 사망원인은 심부전(heart failure)으로 추정되었다. 나는 심부전의 원인을 찾기 위하여, 의무기록지를 자세히 검토했다. 그 결과 림프종 치료 시 사용한 항암제 독소루비신(doxor ubicin)의 심장독성으로 인한 심부전이었다.


독소루비신은 가장 널리 사용되는 항암제의 일종이어서 심장에 미치는 독성에 대하여 아주 자세히 알려져 있다. 이 약을 오래 사용하면 독성이 체내에 축적된다. 일반적으로 축적된 치료용량이 체표면적 1㎡당 550mg 이상이 되면 심장독성으로 인하여 심부전이 발생,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에 더 이상 치료제로 사용할 수가 없는 약제다. 그러므로 이 약제를 사용할 때는 그동안 환자의 치료 경력을 자세히 물어 이 약을 사용했는지, 사용했으면 어느 정도나 사용했는가를 확인, 앞으로 얼마나 더 사용할 수 있는지 충분히 검토한 후에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한다. 특히 요즈음은 해외에서 치료 받다가 오는 환자도 많아 외국 병원의 기록도 검토해야 한다.


이 환자는 처음 림프종 진단을 받고 두 차례의 항암화학요법을 받았을 때 이미 독소루비신 사용이 한계용량을 넘긴 상태였다. 그런데도 혈액내과로 옮겨져 자가골수이식술 전에 치료 효과를 증가시키기 위해 세번째 항암화학요법을 받았다. 이때 독소루비신을 또 사용하는 바람에 심부전이 발생, 자가골수이식술 중 사망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번째 항암화학요법을 하기 전에 어떤 항암제로 치료를 받아왔는지 검토해보아야 했다. 이는 의사라면 의무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항이었다. 항암치료를 오래 받은 환자이기에 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상태이므로 그 이전에 사용해 효과가 없는 항암제를 피하는 것이 첫번째 목적이고, 두번째는 항암제 가운데 한계용량을 초과하면 치명적인 독성이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한계용량에 도달한 항암제는 사용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실제 의사가 이 환자의 이전 치료경력을 검토해 보는 주의만 기울였더라면 독소루비신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독소루비신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환자가 자가골수이식술이 끝나기도 전에 사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환자의 경우 자가골수이식술 전에 이미 심장독성으로 사망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었고 그 증상이 자가골수이식술과 맞물려 나타났을 뿐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이 환자의 기록을 보고 의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최소한 약제의 독성으로 인한 심부전으로 사망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안타까웠다.




무지하고, 경험없는 의사의 치료로 사망



97년 8월경이었다. 삼성의료원에 입원한 환자는 키가 180cm가 넘는 아주 건장한 20세 가량의 남자 대학생이었다. 내가 처음 보았을 때 그 환자는 숨이 차서 걷지도 못할 상태여서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젊은 대학생의 처지가 너무나 안쓰러워 보호자에게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았다.


환자의 보호자는 “림프종으로 진단받고 17번이나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숨이 차기 시작하더니, 점점 악화되어 지금은 걸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환자의 보호자가 림프종의 항암화학요법 중에 한 방법인 CHOP(cy-clophosphamide, doxorubicin, vincristine, Pd 등 4가지 항암제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현재 악성림프종치료의 표준제제임, 보통 찹이라고 칭함)을 몰라서 잘못 말하는 줄 알았다.


항암화학요법을 할 의사가 독성이 있는 독소루비신이 포함된 CHOP을 17번이나 투여하였으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환자가 삼성의료원에 오기 전에 치료받았던 대구의 C병원에서 치료한 의사가 적어준 기록을 검토해 보았다.


“환자는 NHL-AILD 타이프(악성림프종의 한 종류)로 진단 받고 CHOP 유지화학요법 17 사이클 시행 중 환자가 숨이 차 전원(轉院) 시킴.”


이 기록을 본 순간 나는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가 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기록을 의사가 썼다고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도대체 항암화학요법을 한다는 의사가 악성림프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치료방법도 모르고, 치료 약의 부작용도 모르고 완치가 가능한 20세의 건장한 청년을 숨이 차 걷지도 못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이 환자는 결국 사망하고 말았는데 이 의사는 앞으로도 완치가 가능한 환자를 죽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림프종은 항암화학요법에 반응이 좋고, 완치가 가능한 암이다. 따라서 완전관해(임상적이나 검사상으로 병의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상태)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고, 보통 6사이클로 완전관해가 오면 치료를 끝낸다. 이런 항암화학요법을 관해유도항암화학요법이라고 부른다. 림프종 치료에는 유지화학요법의 효과가 없기 때문에 유지화학요법이라는 말을 사용할 일이 없다.


더구나 림프종 치료에 같은 항암제를 17 사이클이나 사용한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독소루비신의 한계용량을 넘어서기 때문에 이로 인해 심부전으로 사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의사는 환자가 심부전이 온 이유도 모르고 자신이 살인자임을 고백하는 거나 다름이 없는 내용의 치료기록을 스스로 적어놓은 것이다.


완치 가능한 20세의 건장한 청년이 종양이 무엇인지, 치료를 어떻게 하는지, 항암화학요법이 무엇인지 등을 전혀 모르는 의사때문에, 한창 젊은 나이에 생명을 잃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계속)

약물 부작용으로 사망



97년 8월 서울 강남 S병원에 20대 남자 환자가 고열로 입원했다. 이 환자는 윌슨씨 병(Wilsons disease)으로 진단돼 디-페니실라민(D-penicillamine)으로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이 병은 13번 염색체 이상으로 생기는 유전적 질환의 하나로, 체내에 구리가 과다 축적되어 장기가 상하는 병인데 디-페니실라민은 구리를 제거하는 치료제다. 그런데 이 치료제의 대표적 부작용은 범혈구 감소증이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정도 검사를 받아야 한다. 만약 범혈구 감소증이 발생하면 백혈구 수가 줄어들어 환자가 감염으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이 환자의 피를 검사한 결과 백혈구, 혈소판 등 범혈구 감소증이 있었고, 백혈구의 감소로 인한 면역기능 저하로 감염이 발생하여 패혈증이 있었다. 이 환자는 항생제 등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패혈증증후증(sepsis syndrome)이 발생, 사망하고 말았다.


이 환자의 의무기록지를 검토한 결과 담당의사는 디-페니실라민을 수 개월동안 사용하면서도 피검사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일 전혈검사(피검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했다면 범혈구 감소증 발생을 확인, 약제를 끊음으로써 범혈구 감소증의 진행을 막고, 골수 기능이 회복. 백혈구 등이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어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생명을 잃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담당의사는 아무 생각도 없이 무조건 약만 계속 투여하는 중대하고, 치명적인 과실을 범한 것이다.




오진으로 잘못 치료해 사망




97년 1월 젊은 남자가 림프종 치료를 받던 중 패혈증에 걸려 사망한 일이 있었다. 사망원인은 림프종이 백혈병으로 진행되었고, 감염되어 합병증이 발생, 이것이 패혈증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환자의 의무기록지를 자세히 검토해 보았다.


해부병리과의 검사결과 이 환자는 처음에는 저등급 림프종(low grade nonhod-gkins lymphoma)으로 나왔다. 림프종은 완만히 진행되는 저등급 림프종, 빠르게 진행하는 중등급 림프종, 급격히 진행되는 고등급 림프종 3가지가 있는데 치료 방법이 각각 다르다. 저등급일 경우 일반적으로 치료해도 완치가 거의 안되며, 병은 7~10년 간다. 중등급과 고등급은 완치가 가능하며, 치료를 하지 않을 시 중등급 환자는 수개월 내에, 고등급환자는 수 주내에 사망하게 된다.


따라서 저등급일 경우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환자에게 부작용이 적은 치료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중등급과 고등급은 병이 빨리 진행되고, 완치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부작용과 독성은 심하지만 고강도의 치료방식을 택하게 된다.


이 환자는 저등급에 준하는 치료를 1년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사실은 중등급 림프종 환자였다. 해부병리과는 첫 잠정 진단 후 2주 정도 지나 최종결과를 중등급으로 진단했고 그 결과지가 의무기록지에 붙어있었다. 담당의사가 이를 확인하지 않고 저등급 치료를 계속하는 바람에 결국 환자를 죽게 한 것이다.


만약에 경험 있는 의사였다면 환자가 사망하기 훨씬 전에, 처음 진단에 의심을 가지고 다시 한번 환자의 상태를 평가하기 위하여 의무기록지를 검토해보았을 것이고, 그렇게 했더라면 의무기록지에 붙어 있는 최종결과지를 보고 즉시 치료 방법을 바꾸었을 것이다.


해부병리과 의사도 잠정진단 결과와 최종진단 결과가 다르면, 결과지를 내보내면서 담당의사에게 전화나 서면으로 잠정진단이 바뀌었다고 알려주어야 한다. 그렇게만 했다면 젊은 환자가 어이없게 사망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백혈병양 반응과 백혈병의 혼동




97년 6월 20대 남자 환자는 천안의 D병원에서 서울 S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당시 환자는 고열과 황달기가 있는 상태에서 매우 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D병원의 기록은 다음과 같았다.


“환자는 고열과 황달을 주소(主所)로 내원, 진단적 검사결과 말초형 티 세포 림프종(PTCL, peripheral T cell lymphoma)으로 의심되며 환자와 보호자가 원하여 전원시킵니다.”


티 세포 림프종은 동양에서 발생빈도가 높고, 특히 고열과 말초혈액검사상 범혈구 감소증이 보일 때, 안 좋은 편이다. 치료는 일반적으로 중등급 림프종 치료에 따른다. 대부분의 환자는 원인 불명성 발열이라는 임상 진단 하에 그 원인을 알아내느라 여러 검사를 받다가 최종 진단에 이르는데 평균 1~3개월 걸린다. 그러나 경험 있는 의사가 환자를 처음 볼 때부터 의심을 가지고 검사를 하면 바로 진단이 가능하다.


그런데 D병원에서 시행한 검사결과는 간기능이 매우 나쁜 것으로 나왔고 점점 악화되는 중이었다. 말초혈액 전혈 검사상(CBC complete blood count: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혈색소, 분화된 백혈구 수 등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로 CBC 결과만 잘 판독하면 혈액관련 질환 및 기타 질환을 거의 대부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음) 백혈구 수가 증가해 있었고, 혈소판은 감소되어 있었다.


응급실에서 검사결과 백혈구가 상당히 증가되어 있었고, 블래스트(blast:주로 백혈병에서 보이며, 감염 등으로 인하여 백혈병양 반응시도 보임)도 나왔다. 간기능은 조금 좋아진 상태였다.


환자는 병실에 입원, 정확한 진단을 하기 위하여 추가적인 검사를 시행했는데 그러는 동안 발열도 사라지고 전반적인 상태가 좋아졌으며 검사결과도 빌리루빈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였다. 간기능 및 혈액응고장애 정도를 반영해주는 검사결과도 계속 좋아지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환자의 정확한 진단은 여러 임상적인 상태와 검사결과를 종합해내려야 한다. 임상병리과의 골수 생체검사결과는 백혈병으로 나왔지만 그것만으로 진단을 확정지어서는 안된다. 왜냐 하면 감염으로 인하여 백혈구와 블래스트가 증가하는 백혈병양 반응도 임상병리과에서는 백혈병으로 진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백혈병과 백혈병양 반응은 부검을 해도 조직학적 검사로는 감별이 안된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는 환자의 전신 상태나 병의 경과과정, 다른 검사의 결과 등을 참고하여 종합적인 진단을 붙여야 한다. 한 가지 검사에 의존해서 진단을 붙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이 환자를 담당한 스태프는 임상병리과의 검사결과에만 의존, 백혈병으로 진단했고 이와 관련한 치료를 당장 시작하려고 했다. 나는 이 환자의 담당 전임의에게 말했다.


“지금 이 환자의 진단은 불확실한 상태다. 만약 백혈병에 의하여 환자가 발열이 생겼고 간기능 등 여러 장기가 손상되었다면, 백혈병에 대한 치료는 현재까지 전혀 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백혈병은 점점 진행될 것이다. 그렇다면 환자의 증상 발열과 간기능 검사 등은 점점 악화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환자는 어떤가. 발열도 없어지고, 간기능 검사 등 다른 검사결과도 질병이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았느냐. 이러한 것들은 백혈병의 경과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 아니냐. 병의 진행경과를 보면 바이러스나 기타 감염으로 인하여 전신상태가 나빠졌고, 백혈병양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 그 정확한 원인은 무엇이었든지 간에 현재 병의 정점을 지나 회복기에 접어 들었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지금은 환자를 조금 더 관찰해야 할 상태다.


환자의 전신상태나 질병의 자연경과 과정에 기반을 두고 치료해야지, 진단에만 의존,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진단에 대한 좋은 치료가 있다 하더라도 환자가 치료를 견딜 수 없을 상태라면 치료로 인하여 환자의 고통만 더 증가시키고, 죽음을 앞당길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환자의 진단이 100% 백혈병이라고 치자. 그렇게 가정하면 환자는 백혈병이 있는 상태에서 감염이 겹쳤을 것이다. 현재 감염이 좋아지고 있다지만 완전히 조절된 것은 아닌 상태다. 또한 간기능은 어떤가, 간기능도 치료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 백혈병 치료를 하면 항암제에 의하여 회복되고 있는 간 기능이 다시 악화, 간기능 부전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감염질환이 회복되고 있는 중이라면 항암제에 의하여 면역기능이 완전히 제거돼 감염이 다시 악화, 환자가 사망할 가능성도 크다. 현재 환자는 전신상태도, 간기능도 회복되어 가고 있으니 백혈병이라 하더라도 지금 당장 치료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지켜보고 회복된 뒤에 치료하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 이 환자에게 백혈병 치료를 하는 것은 살인 행위다.”


이 말을 들은 담당 전임의는 “지금 치료하는 것이 살인 행위라면 살인을 할 수는 없잖아. 백혈병을 치료하는 항암화학요법 제제를 내 손으로 쓰지 않겠다”며 내 의견에 공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전임의가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하는데 담당 스태프가 직접 항암화학요법제제를 의무기록지에 써 내일부터 치료를 시작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내 귀에 들어왔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치료를 하면 좋아지던 환자가 곧 죽을 것이 불 보듯 뻔한데 그냥 보고 있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어린 환자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급히 혈액종양내과 과장을 찾아갔다.


“현재 병동에서 살인 행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말릴 사람은 과장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함께 가셔서 환자를 살펴본 뒤 대책을 세워 주십시오.”


이렇게 간절하게 말하니까 과장은 “한번 병동에 가보자”고 했다. 병동에 도착한 나와 과장은 환자와 검토했다. 과장은 환자와 의무기록지를 검토하고 난 뒤 “지금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치료를 늦추고 좀 지켜보자고 담당스태프에게 이야기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놓여 자리를 떴다. 몇 시간 후 과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담당 스태프의 의견은 이 환자의 병명은 백혈병이기에 꼭 치료를 해야겠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과장은 “스태프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하니, 환자를 담당한 스태프에게 맡기자”고 말했다. 나도 더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후 그 환자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담당 전임의에게 물어보니 “치료 시작 후 며칠이 안되어 상태가 악화, 중환자실로 내려갔지만 곧 죽었다”고 말했다. 나는 마치 전기에 감염이 된 듯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진으로 인하여 진단이 늦어진 사례



98년 9월경 경기도 분당의 J병원에서 한 환자는 당뇨병성 족부궤양으로 내분비내과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환자는 입원 당시 흉부방사성 사진을 찍었다. 이후 족부궤양에 대하여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우측 경부에 림프절이 감지되어, 재차 흉부방사성 검사 후 조직을 떼내 세포학적 검사를 시행했는데 결과는 상피세포성 폐암으로 나왔다.


나는 처음 입원 당시 시행한 흉부방사성 사진을 검토해보았다. 당시의 사진에 벌써 림프절이 커진 것이 조금만 경험 있는 의사라면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요즈음은 진단방사선과도 두경부만 전문으로, 흉부만 전문으로, 복부만 전문으로, 근골격계만 전문으로 보는 식으로 세분되어 각각 자기 전문 부분만 보고 판독하는 실정이다. 이 환자의 흉부방사성 사진을 판독한 의사도 흉부만 전문으로 보는 진단방사선과 의사였다. 그러나 흉부만 전문으로 보는 방사선과 의사라도 어느 정도 경험만 있으면 볼 수 있을 만큼 커진 림프절을 정상으로 판독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처음에 정확하게 판독했다면 폐암이라는 진단이 몇 달간 지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명백한 진단 방사선과 의사의 과실인 것이다.


올해 1월 서울 S병원에 입원했던 60대 남자 환자는 4개월 전 위장관 조영술(위장내 촬영)을 받은 후 담당 의사로부터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지내다가 토혈로 분당의 J병원 응급실을 방문, 위내시경 검사를 했고 위암으로 진단 받았다. 이때는 벌써 위암이 간에 전이돼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고식적 항암화학요법(완치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증상의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항암화학요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환자의 보호자는 4개월 전에 상부위장관 조영술을 받았을 때 위암이 없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위암이 생기느냐며 상부위장관 조영술을 시행한 병원에 가 당시의 검사기록을 확인해보았다. 당시 상부위장관 조영술 결과는 위의 체부에 궤양이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같은 위치에 위암이 있었다. 따라서 4개월 전 상부위장관 조영술시 발견된 위의 병변은 위암이었다.


이 병원 의사는 중대한 과실을 범한 것이다. 위에 궤양이 발견되었으면 환자의 나이와 궤양 위치가 체부라는 사실을 감안하여 위내시경검사를 시행, 조직검사를 하고, 악성 유무를 평가해야 했다. 설사 조직검사결과 위궤양으로 나왔다 하더라도 항궤양 치료를 4주간 시행 후 치료에 대한 반응의 여부를 평가하여, 반응이 없으면 위암을 의심, 재조직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위의 사례를 정리해보면 상부위장관 조영술로 충분히 진단할 수 있었던 위암을 의사의 과실로 진단 기회를 놓치고, 4개월이 지난 뒤에야 제대로 진단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는 벌써 위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4개월 전 진단을 제대로 했더라면 환자는 토혈과 같은 응급상황을 맞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근치적 수술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계속)

경험 없는 의사의 수술




일반적으로 수술로 치료해야 할 병의 치료 성적은 수술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좌우된다. 수술을 잘못하면 수술 후 회복과정에 여러 합병증이 생긴다거나, 재수술을 한다거나, 혹은 암수술의 경우 림프절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면 당장은 괜찮으나 시간이 지난 뒤 재발할 수도 있다. 이러한 수술의 실기는 외과의사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


내가 경험한 어느 일반외과의사의 경우 40대 초반 환자의 동맥-정맥 누관 수술을 하는데 10시간이나 걸렸다. 이 환자는 그 다음날 수술한 동-정맥 누관으로 혈액이 통하지 않고, 동-정맥 누관 이하로 또한 동맥이 막혀 피가 통하지 않아 손이 차고 퍼렇게 변하며 통증을 호소했다.


결국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 재수술을 해야 했다. 1시간이면 끝날 수술을 10시간이나 한 데다 그나마 혈관을 다 망쳐 놓아 다시 재수술을 받아야 하니, 만성신부전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 주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 일반외과의사는 그 전에도 똑같은 수술을 여러 시간 걸려 한 후에 혈관이 막혀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재수술하러 보낸 적이 있었다. 수술을 수백번 하는 중에 한 두번 이런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서너 번 하는 가운데 2번이나 이런 합병증을 일으키니 이런 사실을 환자가 안다면 누가 이 의사에게 수술을 받으려고 하겠는가.


이 일반외과의사에게 위암수술을 받은 네댓명의 환자 중 2명이 수술부위의 협착으로 인하여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 일반외과의사의 수술 기술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수술시 도와주는 간호사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이 의사를 ‘킬러’라고 부른다는 말을 후에 들었다. 나는 아무리 한 병원에 근무하는 동료 의사라 해도 절대로 이런 의사에게 환자의 수술을 의뢰하지 않을 것이다. 동료의사도 의사지만 수술을 받는 환자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과전문의 시험문제 비리



위에서 든 여러 사례는 수많은 의료사고 중에서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내가 근무했던 병원은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곳이고 유능한 의사들이 있는 곳으로 알려진 곳인데도 이 정도였다. 그러니 전국의 수많은 병원에서 저질러지는 각종 의료사고는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물론 의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도 있고 오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최선을 다하다가 이런 의료사고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질도 없는 의사들이 무지와 미숙으로 인해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대부분의 동료의사들이 이를 방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렇게 의사들의 과실이 난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전문의를 배출하는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내과 전문의 시험제도는 조금만 과장해서 말하면 순기능을 상실한 조직 범죄다. 내과 전문의 시험제도의 본래 취지는 내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한 의사를 대상으로 환자를 진료할 기본적인 자질을 갖춘 내과 전문의 자격을 평가, 인정해주는 제도다. 내과학회에서 시험문제 출제위원을 선발하고, 이들이 각 대학 병원의 스태프에게 시험문제 출제를 의뢰해서 스태프들이 제출한 문제 중에서 시험문제를 추출, 이것으로 시험을 치르고, 합격한 사람에게 전문의 자격증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문제 제출을 의뢰 받은 각 대학병원의 스태프는 일부 극소수의 대학병원 스태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험을 쳐야 할 학생, 즉 내과 전공의들에게 출제를 다시 의뢰한다. 한마디로 시험 대상자가 스스로 시험문제를 만드는 아이러니가 연출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내과전문의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수준의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만든 자기들만 맞힐 수가 있고, 문제를 미리 보지 않은 다른 내과 전공의들은 맞히지 못할 정도로 아주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 스태프에게 갖다 주면 그 스태프는 이 학생이 만든 문제를 출제위원에게 제출한다. 이렇게 미리 보지 않으면 문제를 낸 사람 이외에는 도저히 맞힐 수가 없기에 조직범죄라고까지 극언하는 것이다.


이렇게 각 병원에서 학생들이 출제한 문제는 전국적으로 몇 개의 군으로 나뉘어 모이게 되는데, 크게 한강 이남지역과(속칭 삼남지역이라고 함. 경상도 전라도 지역의 병원과, 고려대병원, 가톨릭대 병원), 한강 이북 지역의 병원(서울대병원, 연세대병원 등을 포함한 기타 병원) 군으로 나뉜다.


그런데 한강 이남과 한강 이북 지역의 병원들은 서로 시험문제를 교환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로 교환하지 않을 때도 있는데 이때에는 상대편이 제출한 시험문제를 미리 보지 않으면 답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서로 문제를 빼내기 위하여 온갖 수를 다 쓰게 된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상대편이 답을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가짜문제를 진짜 문제처럼 유출시켜 상대편에 혼란을 야기하는 수법을 쓰기도 한다. 이런 가짜 문제지에는 제대로 정답을 맞히기 위해서는 모든 책을 펴놓고 풀어도 하루가 걸리는 문제들이 수두룩하다.




수백만원짜리 문제지 유출



서울대, 연세대, 경북대, 전남대 등 대형 대학병원 학생들은 그나마 형편이 괜찮은 편이지만 문제는 이런 대형 대학병원에서 수련 받지 않고 내과전공의 수가 네댓명정도 되는 군소 종합병원의 전공의들이다. 이들 군소 종합병원의 전공의들은 자기가 일하는 지역의 가까운 대형 대학병원이나 진짜 문제를 많이 보유한 것으로 소문난 병원에 가서 수백만원을 주고 시험문제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들 중소 종합병원의 전공의들은 4년차가 되면 병원 일은 뒷전에 두고 1년 동안 이들 대형 병원에 가서 시험문제를 보기에 급급하다. 내과 전공의 과정은 3년만 해도 충분한데 4년으로 바뀐 가장 큰 이유가 4년차만 되면 이렇게 1년동안 시험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시험칠 때가 되면 학생들은 시험문제를 빼내 조직적으로 돌려보기 위해 모두 호텔에 들어가 합숙을 하는 실정이다. 호텔에 지불하는 비용도 엄청나다. 시험을 칠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어두컴컴하고, 책상도 제대로 없고, 식사도 불편한 호텔에 들어가 공부하는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는 오로지 출제된 문제를 미리 빼내 조직적으로 돌려보기 위한 것이다. 문제를 미리 보지 않으면 거의 맞힐 수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필사적으로 호텔에 들어가 합숙을 하는 것이다.


나는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면서 이런 조직적인 범죄사실에 접하고, 도저히 이런 범죄적인 시험을 치를 수가 없었다. 나름대로 이러한 조직적인 범죄행위를 고쳐 보고자,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이는 도저히 내과학회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언론에 제보도 해봤지만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보도되지 못했다.


결국에는 나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시내 호텔에서 합숙하면서 내과 전문의 시험을 준비했다. 그런데 시험 전날 어느 병원 전공의가 문제를 수십 가지 들고 와 내일 시험에 출제될 문제라고 하여, 전체가 돌려보았는데 그 다음날 시험장에 가보니 그 문제가 그대로 출제되었다. 어떻게 문제를 빼냈는지 참 신기한 일이었다. 출제위원이 빼돌리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내과 전문의 시험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문제지가 수백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내과전문의 시험은 내과전공의 수련과정을 마친 의사가 내과전문의로서 환자를 진료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자질에 관한 객관적인 시험이어야 하는데 이렇게 미리 보지 않으면 맞힐 수가 없는 문제를 돈으로 거래하는 마당에 어떻게 자질 있는 의사가 나오겠는가.


최근 내과학회에서 분과 전문의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 역시 문제가 많은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내과 전문의가 개업을 하는 실정이지만 미국과는 달리 개업을 하면 그 전문의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기가 어렵다. 왜냐 하면 미국은 병원이 개방된 형태이기에 대부분의 의사는 병원 주위에 사무실을 하나 얻어놓고 환자를 진료할 필요가 있으면 환자를 병원에 입원시켜놓고, 아침 저녁으로 병원에 들러 진료하고, 낮에는 사무실에서 외래환자를 볼 수 있기에 자기의 전공을 살릴 수가 있다. 그러나 한국은 병원이 폐쇄된 형태를 취하고 있어 입원할 환자가 오면, 직접 진료할 수가 없고, 종합병원으로 환자를 보내주어야 한다. 따라서 간단한 질병의 환자를 볼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분과전문의 제도



이런 실정에 분과 전문의제도가 생기자 개업을 하여 1차 진료를 담당할 내과전문의들 대부분이 다시 분과전문의 자격증을 따기 위하여, 1~2년간 병원에 들어가 분과를 하나씩 선택, 분과전문의 과정을 밟게 됐다. 1차 진료를 담당하려면 내과 전반을 알아야 하는 데 분과 전문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1차 진료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세부지식만 배우고 다른 전반적인 지식은 신경을 못쓰게 됨으로써 실제 개업하여 1차 진료를 하는데는 분과전문의 제도가 오히려 장애만 될 뿐이다.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분과 전문의도 마찬가지다. 분과전문의라면 내과전문의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내과 전반의 지식기반 위에 전문지식을 쌓아야 하는 데 분과전문의라면 마치 타 분과에 관해서는 몰라도 된다는 식이 돼 환자를 진료하는데 실수를 범할 우려가 있다.


나는 분과전문의 제도가 생겼을 때 이 제도 또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서 시험을 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문제점을 거론했지만 혼자서는 보이코트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결국 시험은 쳐두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험을 쳐보았는데, 이 역시 내과전문의 시험보다 더 심한 범죄였다.


시험 당일 시험장에 가 보니까, 전날 벌써 수험생들끼리 모임이 있었고 시험 시작 한 시간 전에 어느 병원 출신인지 문제를 수십 개 가지고 이번에 출제될 문제라고 떠들었다. 막상 시험문제를 받아 보니 바로 그 문제가 철자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출제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도대체 누가 문제를 빼돌리고, 누가 훔쳐냈단 말인가. 머지않아 내과분과 전문의 시험제도도 서로 문제를 훔쳐내고, 돈 받고 파는 제도로 전락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외에도 임상의나 개업의의 관점에서 보면 학회의 무분별한 난립, 필요없는 박사학위, 연구비의 낭비, 신설의대의 양산 등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객관적 평가제도 마련돼야



무엇보다도 의료과실이 난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규제와 객관적 평가의 부재다. 미국과 같이 투명하고 개방적인 사회에도 의료과실에 있어서는 의사들끼리 서로 동료를 보호하는 바람에 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만큼 한국처럼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상황에서 객관적인 평가나 규제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동료 의사의 이익에 반하는 증언을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의사가 과실을 범해도 의사끼리 서로 감싸주기에 의사는 전혀 가책이나 자기반성이 없이, 같은 과실을 반복하여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의사의 과실을 줄여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과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규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의료과실에 대한 보상시 의사 개인적으로 부담하기에 벅차므로 의사를 위한 책임보험제도 같은 것도 마련되어야 하고, 전문 의료인으로 구성된 객관적인 의료평가기관도 있어야 하고, 또한 병원 자체적으로 평가 시스템을 마련, 자체적인 규제도 가해야만 한다.


의료과실시 전문적인 의료지식이 부족한 환자나 보호자를 위하여 객관적인 전문가의 의견을 제공해줄 수 있는 제도도 마련돼야 한다. 이렇게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되면 의사는 진료시 좀더 주의를 기울이고, 의료과실을 범했을 때 그에 따른 불이익과 규제가 따른다면 같은 과실을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의료기관과 의사를 평가하여 환자에게 그 정보를 공개하고, 환자는 치료 받기 전에 더 훌륭한 의료기관이나 의사를 선택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의료기관이나 의사들 간 자유경쟁이 이루어지고 의료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고, 과실을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며 환자의 권익은 존중되고 신장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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