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중간을 돌아보다

2009.09.17 09:39

단장 조회 수:4352 추천:876

최근 1리터의 눈물이라는 책을 읽었다.

사와지리 에리카가 나온 드라마로 더 유명하지만 내가 그녀를 싫어하는지라 일부러 보지 않은데다
원래 나는 원작이 있으면 원작 쪽을 [읽는]걸 더 좋아한다. 아무래도, 글 쪽이 상상력이 자극되기 때문이다.
영상 매체는, 너무나 많은 정보를 보여 주기 때문에 오히려 한 방향으로 시청자들을 몰고 가는 경향이 있다.
글 쪽과 비교하면, 지은이가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쓴 글이 있는가 하면, [나는 이러한데 너는
어떻게 생각합니까]정도로 적당히 제멋대로인 글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글을 읽는 이는 원작자가 원하는
의도대로는 생각해 주지 않기 마련이다. 그래서 반론이 나오고 분석이 나오는 것인데, 이런 다각적인 사고는
건전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에 별다른 철학 따위는 없지만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정도로 적당히
생각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 정도로 나는 생각하고 있다. 내가 적당주의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닌데, 1리터의 눈물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느낀 것은
[키토 아야라는, 불과 약관의 소녀가,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 내는구나]라는 것이었다. 좀 까놓고
말하자면 키토상, 아니 그 이상으로 비참하게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은 많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누구나
죽어가는 것 아닌가. 그런 그녀에게 동정심은 들지 않았고 또 아마 그녀도 동정을 목적으로 일기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남긴 일기에 주옥같은 문장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타이틀인

[이렇게 웃기까지, 1리터의 눈물이 필요했다]

이 문장은 정말로 1리터의 눈물을 흘려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경은 사람을
이렇게 강하고 아름답게 만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녀도,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저런 생각을
힐 필요도 이유도 없이, 눈에 띄지 않은 삶을 살아갔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러한 말도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결과론적으로 추론해 낸 것에 지나지 않기에 큰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그녀가 앓고
있던 [척수소뇌변성]이라는 병이 그녀에게 저렇게도 애절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경험이란 것은, 내용의 양으로는 절대 지식 등의 학습법에 비교할 수 없지만 반면에 깊이에 있어서는 어떠한
학습법보다 우위에 있다. 의사가 척수소뇌변성증에 대해 알고 있고 치료법이나 기타 방법을 알고 있다고는 해도
[1리터의 눈물이 필요했다]라는 말은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주치의가 그녀의 [선생님, 저도
아이를 낳을 수 있나요] 라는 질문에 아무 생각 없이 [무리야] 라고 대답한 것 처럼, 지식의 깊이는 사고의 깊이와
일치하지 않으며 항상 적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의 경우에는 경험이 많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젊은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문장을 쓸 수 있겠지만, 10대의 소녀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의
병이 그녀의 일기를 만들어 냈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키토 아야는 17살에 [이렇게 웃기까지 1리터의 눈물이 필요했다]라는 말을 만들었다.
나츠메 소세키는 37살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집필했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스물아홉에 [위대한 개츠비]를 썼다.

이런 사실을 알고서 나는, 무엇이 모자라서 그런 글들을 써 낼 수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글뿐만이 아니다
30대 중반에 많은 것을 이룬 사람도 많다. 혹자는 20대에 이루기도 한다. 카이사르도 그랬다. 뭔가 분발해야
하는데 분발할 추진제가 무엇인지 찾지 못하고 있다. 내가 키토 아야보다 못하다 낫다 이런 비교를 위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선인들은 이렇게도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내가 여기서 정진하지 못한다면
나는 무엇에도 쓸모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삶의 중간에서 나도 그녀처럼 그녀 자신의 인생이 농축된 것과 같은, 아름다운 한 마디를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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