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헌터가 우리들의 공통언어가 된 날

2008.05.1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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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출처는 루리뽕이라는데 펀걸 또 펀거라 링크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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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헌"이 우리들의 공통언어가 된 날 (1)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고 싶다면 강대한 몬스터를 자기 힘으로 잡으라. 그런 유저들을 내던진 게임이 드디어 100만개를 돌파했다. 이제는 전국의 게임 팬들의 공통언어가 된 "몬헌"의 탄생을 여기 말한다.



시작하며



2007년 2월 22일에 발매된 캡콤의 PSP용 소프트 『몬스터 헌터 포터블 2nd』의 판매개수가 발매한지 불과 2주만에 100만개를 넘었다. 2005년 12월에 발매된 이래 밀리언 히트 소프트가 태어나지 않았던 PSP에 있어서 처음으로 "100만"을 돌파한 소프트이다. 100만개 팔리는 소프트를 낳느냐 못 낳느냐가 그 하드가 시민권을 얻었는지 아닌지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몬스터 헌터 포터블 2nd』가 한 역할은 크다.

이번 『2nd』의 탄생에 의해 "몬헌" 시리즈는 게임 팬 누구나가 아는 일대 브랜드가 되었다. 20대부터 30대의 소위 코어 게임 팬 뿐만 아니라, 이제는 학생층, 나아가서는 여성층에까지 "몬헌" 브랜드는 침투하고 있다. 100만개 팔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필자도 열광적인 시리즈의 팬 중 한사람으로써, 쭉 『몬스터 헌터』가 탄생한 경위를 쓰고 싶었다. 그렇다고 「100만개 팔렸으니까 써볼까...」하는 게 아니라, 왠지 내 마음 속으로 "때가 무르익었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나 『2nd』는 『몬스터 헌터』시리즈의 다섯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타이틀이다. 그냥 이 소프트만의 탄생 이야기를 쓰는데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리즈 전작품을 감수한 캡콤의 후지오카 카나메 디렉터, 『2nd』를 프로듀스한 츠지모토 료조 프로듀서, 『몬스터 헌터 포터블』시리즈의 디렉터로 『2nd』에서도 디렉션을 담당한 이치노세 야스노리 디렉터, 초대 『몬스터 헌터』이래 시리즈 작품의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코지마 신타로 플래너라는, 소위 "몬헌 4인방"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리즈 전작품을 부감하면서 『몬스터 헌터 포터블 2nd』의 탄생을 파헤치고자 한다.




"몬스터 헌터"와 후지오카 카나메

『2nd』의 탄생을 말하기 전에, 애당초 초대 『몬스터 헌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리즈 전작품을 관통하는 "몬헌의 피"는 이 남자가 제작에 가세함으로서 생명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 "미스터 몬스터 헌터" 후지오카 카나메이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등 주로 아케이드 게임의 애니메이션 제작을 담당했던 후지오카에게 이야기가 들어온 것은 2003년 5월경의 일. 당시의 캡콤은 지금 만큼 소프트 제작부서가 통합되어 있지 않아, 후지오카는 캐릭터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을 총괄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가운데, 기획은 시작되었지만 도무지 제작이 궤도에 오르지 않는 "몬스터 헌터"라는 게임의 회의에 참가해 달라고 요청받는다. 물론 입장은 디자이너의 한 사람으로써. 후지오카는 캐릭터맨을 총괄하는 입장에서 주로 캐릭터나 몬스터에 관해 여러 가지 조언을 해 나갔다. 그러자 후지오카의 어드바이스에 의해 이 게임의 제작상황 자체에 뚜렷한 궤도수정이 이루어져 갔다. 『몬스터 헌터』에 최초의 "생명"이 불어넣어진 순간이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안 할래? 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후지오카)


"본격적으로"라는 건 물론 제작 자체를 총괄하는 "디렉터"로써 소프트를 설계해 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초 후지오카에게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계속 "해달라"는 말을 들었지만 하고 싶지 않았죠 (쓴웃음). 캐릭터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저는 캐릭터맨으로 됐습니다"라고 했었습니다」(후지오카)


그러나 몇번씩 회의에 참가하는 와중에 후지오카의 심경에 변화가 찾아온다. 후지오카는 『몬스터 헌터』라는 기획에 조언을 할 때, 늘 "캐릭터의 움직임과 게임성의 양립"이라는 디자이너이기에 가능한 시점을 가지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애니메이션을 넣으면 유저들이 플레이할 때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가"라는, 게임의 구조 자체와 통하는 생각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제가 직접 캐릭터나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아도, 디렉터라는 입장에서 부감하는 편이 다양한 게 보이게 되는가 싶어 받아들이기로 한 겁니다」(후지오카)


그러나 당시는 아직 게임을 설계한다는 입장이 지금처럼 명확하지 않아, 기본적으로 그 일은 기획을 주로 담당하는 사람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후지오카처럼 디자이너 출신인 사람이 게임의 설계 자체에 종사하는 경우는 대단히 이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심은 했지만 「솔직히 뭘 하면 될지 전혀 알 수 없었다」며 후지오카는 우는다.


「어쨌든 그때까지 만들어 온 플래너(기획맨)들의 제작 진행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디렉터가 되었지만 제가 뭘 판단하거나 지시해도 될지 전혀 알 수 없었죠. 그래서 플래너에게 "난 뭘 하면 되지...?"라고 묻기도 했죠 (쓴 웃음)」(후지오카)


그런 가운데 후지오카에게 도움이 된 것은 과거 자신과 관계가 깊었던 디자이너들이 『몬스터 헌터』의 제작에 참가해 준 것이었다. 플래너들에게는 여전히 자신이 어떤 판단을 내리면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전문분야인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실마리 삼아 서서히 후지오카 체제가 가동되기 시작한다. 「이런 식이면 되려나?」하는 암중모색 상태였다고 하지만, 그래도 기획 『몬스터 헌터』는 확실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액션"에 집착해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플레이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소프트는 어떤 의미에선 유저들을 철저하게 내팽개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애당초 전제로 『몬스터 헌터』는 유저들에게 네트웍에 접속해 줄 것을 요구했다. 물론 네트웍으로 연결되지 않은 상태라도 플레이할 수는 있지만, 초대 『몬스터 헌터』는 특히 오프라인 모드에서 할 수 있는 게 적어, 거의 튜토리얼 모드(본격적으로 플레이하기 위한 기초를 배우는 모드)라 해도 될 정도로 단순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당시 가정용 게임기의 네트웍 환경은 쾌적하다고 하기는 힘들어, 플레이하고 싶으면 하드와는 별개로 네트웍 접속을 가능케 하기 위한 주변기기를 사서 갖출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샀다고 해서 바로 네트웍 모드를 플레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번잡한 네트웍 접속설정을 하거나 과금 계약을 하는 등, 롬을 넣은 순간부터 플레이할 수 있는 오프라인 모드에 비하면 너무나도 허들이 높았던 것이다.


그리고 브랜드로 확립되어 지금이야 「캡콤다운 게임」이라고 이야기되지만, 초대 『몬헌』의 제작 당시는 사내에서도 찬반양론의 푹풍우였다고 한다.

그래도 후지오카 등은 네트웍에 집착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액션"도 철저하게 파고들어 갔다. 내용면에서는 많은 아이템과 소재를 도입, 플레이어의 생각대로 캐릭터를 키울 수 있는 RPG적 요소도 들어 있지만,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것, 가장 집착하고 싶은 건 액션 부분이었던 것이다.


체온마저 느껴질 정도로 리얼하게 약동하는 거대한 몬스터와, 그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플레이어의 분신이 되는 헌터들. 말은 쉽지만 리얼타임으로 복수의 플레이어가 같은 몬스터와 싸우는 게임을 만드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허들이 높았다. 그 증거로, 『몬스터 헌터』와 똑같은 네트웍 대응 멀티 플레이 액션 게임은 있기는 있었지만, 이 만큼 액션에 경도된 작품은 전세계 어디를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이 시리즈만큼 뛰어난 액션을 리얼타임 네트웍 게임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참신했기 때문에 제작상에서 참고가 되는 작품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은 정말 처음부터 모든 부분을 새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대담하게 만들 수 있었는지도」라고 후지오카는 말한다. 『몬헌』제작팀은 모든 부분에서 기존의 액션 게임의 "불문율"에 도전해 나갔다. (2편에 계속)










"몬헌"이 우리들의 공통언어가 된 날 (2)


플레이어를 방기하다!


후지오카 등은 먼저 액션 게임의 상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보"를 한계까지 감추는 걸 제작의 근저에 두었다. 정보란, 플레이어의 체력이나 스태미너, 그리고 상대 몬스터의 체력이나 준 대미지를 표시하는 숫자나 그래프를 말한다. 많은 게임에서는 보통 자신의 행동이 몬스터나 게임의 세계에 얼마 만큼의 영향을 미쳤는지를 플레이어가 실감하게 디지털로 표시된다. 그러나 『몬스터 헌터』의 세계에서는 플레이어의 체력과 스태미너 이외에 거의 어떤 정보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이건 "방기"나 다름 없는데, 후지오카는 「가능하면 정보를 더 줄이고 싶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소한 유저의 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는 표시해 주지 않으면, 플레이어가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 여러 가지 살을 붙여 나갔습니다. 먼저 맵을 볼 수 있게 하고 거기에 플레이어의 위치를 표시했으며, 최종적으로는 아이템이나 스킬로 표시되었습니다만, 몬스터의 상태나 위치도 시각적으로 알 수 있게 했죠」(후지오카)


그래도 끝까지 몬스터에게 입힌 대미지와 남은 체력을 나타내는 게이지는 도입하지 않았다. 숫자에 의한 디지털 표시가 아니라, 몬스터가 쓰러지거나 발을 끄는 "움직임"에 의해 아날로그로 유저들에게 전달하려 한 것이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제작 출신으로 디렉터에 발탁된 후지오카만의 고집이 있었다. 사실은 유저 캐릭터의 체력 표시도 없애, 몬스터와 마찬가지로 모션만으로 모든 걸 표현하고 싶었던 시기도 있었다고 하는데, 게임으로서의 밸런스를 고려했을 때, 지나친 방기는 역효과가 된다고 생각, 도입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몬스터의 체력을 표시하지 않는다"는 영단이 『몬스터 헌터』라는 게임에 각별한 "긴장감"을 가져왔다. 몬스터가 언제 쓰러져 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긴장하면서 화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게 만약 몬스터에게 체력 게이지가 도입되어 있어 「앞으로 3번 베면 퀘스트 종료다」라고 역산할 수 있었더라면 지금의 대히트도, 밀리언 돌파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또 한가지 『몬스터 헌터』를 말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이템의 수수"에 대해서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온라인 게임에서 유저간의 아이템 수수는 기본적으로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러면 초보자라도 베테랑 플레이어로부터 강한 무기나 방어구를 물려 받아 초반을 편하게 헤쳐나갈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허들을 낮출 수 있다.


그러나 『몬스터 헌터』는 쓰러뜨린 몬스터로부터 소재를 벗기고, 그걸 바탕으로 원하는 무기를 만드는데 무게를 두고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아이템을 주고 받는 게 가능해지면 사냥에 나서기 위한 모티베이션을 극단적으로 낮춰 버릴 우려가 있었다. 게다가 플레이스테이션 2처럼 보급된 하드면 데이터를 개조하는 유저가 나왔을 때, 부정하게 늘린 아이템을 무제한으로 다른 플레이어에게 나눠줘 버릴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제작팀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물론 데이터 개조 자체도 큰 문제지만, 타인에게 그 아이템이 넘어가게 되면 영향이 너무나도 광범위해 게임 자체가 엉망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중요한 아이템이나 무구를 주고받을 수 있으면 게임의 문턱이 낮아지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면 질서가 어지럽혀져, 불온한 공기를 느낀 온라인 초보자가 떠나가 버릴지도 모른다...


후지오카 등은 의논했다. 그야말로 철저하게. 아이템의 수수에 의미는 있는가? 그리고 주고 받을 수 없는 것이 게임의 문턱을 너무 높이는 건 아닌가... 근본적인 것이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망설였다. 이 판단이 『몬스터 헌터』라는 게임의 방향을 결정지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제작팀은 결단했다. 몬스터로부터 벗겨내 입수하는 레어 아이템과 무기, 방어구의 수수는 기본적으로 없는 걸로 하기로.


「원래 넷이서 협력하는 게임이니까 그래도 될 거라고 결론을 냈습니다. 물론 고민했죠. 아이템의 수수는 온라인 게임의 기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자기가 갖고 싶은 소재는 자기가 노력해서 손에 넣어라"라고 계속 말하기로 한 겁니다」(후지오카)


이렇게 해서 "아무리 강한 몬스터라도 자기 손으로 쓰러뜨리지 않는 한 귀중한 아이템은 입수할 수 없다"는, 전대미문의 "유저 방기 게임"의 정체성이 탄생했다.


<U>그때 몬헌 4인방은</U>


그렇게 후지오카의 가세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몬스터 헌터』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친숙해진 "몬헌 4인방"의 다른 세 사람은 당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먼저 『2nd』의 프로듀서 츠지모토 료조는, 당시 플레이스테이션 2용 레이스 게임 『아우토 모델리스타』의 제작에 참여하고 있었다. 실은 이 『아우토 모델리스타』는 온라인에 대응한 레이스 게임으로써 당시 신기원적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었는데, 이때 온라인 관련 지식, 기술을 기른 츠지모토는 후에 『몬스터 헌터』의 제작에서도 서버의 관리나 통신 시스템의 운영에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 츠지모토와 함께 『아우토 모델리스타』의 제작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 이치노세 야스노리이다. 이치노세는 『아우토 모델리스타』의 제작이 끝난 뒤, 다음에 참여할 소프트로 플레이스테이션 2용 온라인 대응 소프트 『바이오 해저드 아웃브레이크』와 『몬스터 헌터』둘이 눈 앞에 있었을 때, 회사의 의향에 의해 『바이오 해저드 아웃브레이크』의 기획을 담당하게 된다. 당시를 돌아보며 후지오카는 「『몬스터 헌터』의 제작에 이치노세가 꼭 있었으면 했습니다만, "안돼. 『바이오 해저드 아웃브레이크』를 만들게 한다"고 해서...」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이로써 이치노세는 『몬스터 헌터 포터블』의 기획이 시작될 때까지 이 시리즈의 제작에 참여하는 일은 없지만, 츠지모토와 마찬가지로 『몬스터 헌터』와는 다른 팀이면서 온라인 대응 게임을 계속 제작하게 되어, 나중에 디렉션을 담당하게 된 『몬스터 헌터 포터블』, 『몬스터 헌터 포터블 2nd』를 위해 힘을 비축해 나가게 된다.


이 네 사람 중에 초대 『몬스터 헌터』의 초기단계부터 기획에 참가했었던 것이 코지마 신타로이다. 『2nd』에서는 이벤트 출연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코지마도 『아우토 모델리스타』에서 온라인 부분을 담당했던 경력이 있어 『몬헌』에서는 초대 때부터 시리즈의 꽃이라고도 할 몬스터 제작의 메인을 맞는다. 나아가 홈페이지의 기획 등도 맡아, 「저는 처음부터 "연료 투하 담당"이었습니다」라며 웃는다.


이처럼 초대 『몬스터 헌터』의 제작 당시는 네 사람이 모두 제각각 일해, 실제로 같은 팀의 일원으로 움직이게 되는 건 『몬스터 헌터 2 (도스)』, 『몬스터 헌터 포터블』까지 기다리게 되는데, 실은 초대 『몬스터 헌터』의 제작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회는 찾아오게 된다. 그것은 불과 몇년 사이에 여섯 작품이나 되는 시리즈 작품이 등장한 『몬스터 헌터』라는 게임의 레종 데토르와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건 또 다음 편 이후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3편에 계속)








몬헌"이 우리들의 공통언어가 된 날 (3)


디렉터 후지오카 카나메의 가세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몬스터 헌터』. 그러나 그들 앞에 온라인 대응으로 인한 난제들이 잇따라 닥쳐 온다. 아이템의 수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애당초 자신들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액션 게임을, 온라인 대응 소프트로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편하게 들어갔다 편하게 나갈 수 있는 온라인 액션 게임"을 목표로 하는 그들은, 뜨거운 정열로 여러 가지 허들을 극복해 간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


『몬스터 헌터』개발의 역사는 "시행착오와 조정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지난 회에 언급한 "액션에 대한 집착"이나 "아이템의 수수"는 그 대표적인 예로,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생각하는 액션을 온라인 게임으로서 실현할 수 있을지, 디렉터인 후지오카 카나메를 중심으로 철저한 시행착오가 매일 반복되었다.

그들이 목표로 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까지 PC용 온라인 게임에서는 탑재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던 요소(아이템의 수수 등)에 대해서도 「당연하다는듯이 그대로 탑재하는 게 아니라, 『몬스터 헌터』라는 타이틀에 정말 필요한 요소인지를 끝까지 생각했다」(후지오카)고 한다. 뿌리내린 것처럼 보이는 온라인 게임의 룰이나 시스템도, 깊이 생각해 보면 좋은 부분 뿐만 아니라 나쁜 부분도 부각된다. 그 나쁜 부분이 유저들에게 부하를 주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었다. 후지오카는 도저히 그걸 용납할 수 없었다. 유저들에게 부담을 줄 바엔 자신들 나름의 방법으로 만성이 된 상태를 어떻게 해보고 싶다 -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아이템에는 레어도라는 것을 설정, 귀중한 것은 유저끼리 주고 받을 수 없는 『몬헌』시리즈만의 룰이 태어나는데, 후지오카가 결단, 제작팀 사람들에게 「아이템이나 장비의 수수는 기본적으로 없는 걸로 한다」고 선언했을 때, 플래너인 코지마 신타로는 (우와! 선언해 버렸다!)라는 경악과, 일종의 확신을 느꼈다고 한다. 아이템의 수수가 없는 온라인 게임은 그만큼 특이한 것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필두로 제작팀은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액션 게임을 완성하는데 장애가 될만한 것은 죄다 "재구축"해 나갔다. 『몬스터 헌터』에서는 거대한 비룡으로 대표되는 "메인 몬스터" 이외의 소형 몬스터의 경우는, 플레이어간에 완전히 동기화하고 있지는 않다. 즉 4명이서 퀘스트에 출격해도 소형 몬스터의 경우는 각자 따로 따로 싸우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자신들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액션 게임을 구현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소형 몬스터를 동기화해 버리면, 통신 사정상 메인이 되는 비룡의 움직임이 느려지게 됩니다. 게다가 플레이어 자체의 움직임도 느려져 버렸죠... 그때 생각한 겁니다. "이 게임은 뭐가 재밌는 거지?"라는 걸. 결국 생각해 낸 답이 격렬하게 움직이는 대형 몬스터를 헌터가 "액션"을 통해 쓰러뜨리는 것이라는 것. 소형 몬스터가 동기화된 상태에서 대형 몬스터도 동기화되어 있는 것이 최선이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형 몬스터의 움직임과 헌터의 액션이 죽을 바엔 소형 몬스터를 동기화하는 건 포기하자고, 단장의 심정으로 결단했습니다」(코지마)


『몬스터 헌터』가 브로드밴드에 특화한 타이틀이 된 것도 이와 통한다. 초대 『몬스터 헌터』발매 당시엔 전화선을 이용한 다이얼업 접속인 가정도 많아, 실제로 가정용 게임기용 온라인 게임도 다이얼업을 지원한 게 많았다. 그러나 회선속도가 느린 다이얼업 접속으로 정보량이 많고 움직임도 빠른 『몬스터 헌터』를 플레이하게 하는데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다이얼업 대응은 포기했다. 이것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액션을 실현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이렇게 『몬스터 헌터』의 제작현장에는 계속 어려운 선택지가 나타났다. 전례가 없는 게임인 까닭에 이 편이 옳다는 명확한 답 같은 건 어디에도 없어, 판단을 내리는 입장에 있는 후지오카의 마음 고생은 이루 헤어릴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분기점에 접어들었을 때, 후지오카는 동료들과 성이 찰 때까지 토론을 했다. 특히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질 것 같은 요소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되는지, 왜 틀렸는지를 그야말로 밤새 의논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기존의 온라인 게임보다 더 유저들이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공간이나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편하게 들어갔다 편하게 나올 수 있는, 점착질이 아닌 커뮤니케이션 툴을」(후지오카)


후지오카는 이것을 "스포츠에 가까운 것"이라고 표현했다. 시간 구속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었던 종래의 온라인 게임에 대한 안티테제 같은 것으로, 실제로 완성된 『몬스터 헌터』는 가벼운 풋웍에 있어서 전례가 없는 작품이 되었는데, 후지오카 등 제작팀이 목표로 한 것이 바로 그것으로 「1시간 플레이하면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하고 싶었다」(후지오카)고 한다.

"데스 페널티"에 대한 생각도 "편안함"을 추구한 결과 나온 것이다. 액션 게임이든 RPG든 현재의 비디오 게임에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쓰러졌을 때는 반드시 어떤 페널티가 설정되어 있다. 소지금이 절반이 된다, 갖고 있던 아이템이 몰수된다, 세이브 포인트까지 되돌아가게 된다... 등등. 후지오카는 이것을 「만들고 있는 쪽에서 "있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요소」라고 하며, 『몬스터 헌터』의 세계에는 약간의 마이너스가 있는 정도고 페널티다운 페널티는 도입하지 않았다. 이 또한 실로 특수한 자세이다. 다만 종래의 게임의 방정식으로 본 경우지만.


「자기가 불이익한 상태가 되었을 때, 게임의 전원을 꺼버린다든가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될 바엔 "이대로 게임을 계속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게 설계하고 싶었습니다. 하드면에서도 메모리면에서도 갑자기 전원이 꺼지거나 접속이 끊어지면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버리는 점도 있어, "리셋이 제일!"이라고 여겨지게 하고 싶지 않았죠. 그렇다면 데스 페널티 같은 건 필요 없다는 생각에서 도입하지 않았습니다」(후지오카)

대단히 단호하게 판단하고 있는 것 같지만, 후지오카의 머리 속에는 늘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하는 망설임이 있었다. 견본이 된 게임도, 자신의 판단에 대한 유저들의 반응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스템을 구축할 때는 정말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필자는 물었다. 당연히 존재했던 요소를 버리지 않으면 안될 때, 뭐가 결정요인이 되느냐고. 이 질문에 대해 후지오카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최후의 순간엔 자기 자신을 믿는 것. 자신의 판단을 믿는 것. 그것 밖에 없습니다」(후지오카)




몬헌"이 우리들의 공통언어가 된 날 (4)


상징 리오레우스의 탄생



『몬스터 헌터』의 탄생을 말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게임의 타이틀이 되기도 한 "몬스터" 자체가 어떻게 해서 태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몬스터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후지오카나 코지마는 구체적으로 형태나 설정을 만들기 전에 "애당초 이 게임에 있어서 몬스터란 어떤 존재인가"를 깊이 논의했다. 플레이어의 분신인 헌터가 봤을 때 어떤 지위가 되는 것인가. 헌터에 대해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애당초 『몬스터 헌터』라는 상자 속에 넣었을 때, 그 세계관 내에서 어떻게 서 있는 것인가...?


근저에 둔 것은 메인 몬스터가 되는 "비룡"은 헌터들의 라이벌이 되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바람이 거칠게 불어대고, 비가 내리고, 빛이 내리쬐는 대지 위에서 호흡하고, 자고, 사랑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몬스터를 수렵한다... 그런 삶의 영위마저 플레이어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존재로 만들고 싶었다. 코지마 등 몬스터 담당팀은 그야말로 매달리다시피 공룡도감이나 동물의 해체도 같은 걸 체크하고, 나아가 전국의 동물원에 가서 생물의 움직임을 흡수해 게임에 반영시키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었다.


그런 가운데 탄생한 것이 상징 리오레우스이다. 리오레우스로부터 추구한 것은 "벽"으로서의 존재감이었다. 플레이어가 장비할 수 있는 아이템이나 『몬스터 헌터』의 세계에 들어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해 겨우 쓰러뜨릴 수 있는 라이벌로 만들고 싶다. 그런 바람이 이 리오레우스에는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도 단순히 체력이나 공격력을 늘렸을 뿐이면 삶의 영위를 보여준다는 생각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한창 사냥 중에도 그저 단순히 마구 공격해 오기만 하는 게 아니라, 몬스터 쪽이 긴장을 늦추는 순간이나,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도망치려는 행동 같은 것도 담아 나갔다. 나아가 헌터와 만나기 전에도 필드상을 배회하게 해, 물을 마시거나 둥지로 돌아가는 등 "살아 있는 동물들이 보통 한다"고 생각되는 움직임을 심어 나갔다. 플레이어 쪽에선 전혀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의 행동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몬스터 헌터』의 세계에 사는 동물들에게 각별한 "리얼함"을 갖게 하는 것이다.

완성된 리오레우스는 그야말로 헌터의 라이벌이 되는 존재였다. 첫 접촉은 평온하지만, 헌터로부터 공격을 받아 몰리면 몰릴수록 쉽게 분노해 힘을 내어 반격해 온다. 응전에 지쳐 배가 고파지면 식사를 위해 날아가고, 상처를 입으면 물을 마시거나 소굴로 돌아가 수면을 취해 체력을 회복하려 애쓴다. 그에 맞서는 헌터는 섬광옥이나 함정 같은 수렵 아이템의 사용법을 익혀, 어엿한 헌터로서 성장해 간다. 이렇게 해서 비룡의 기초가 되는 "상징"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 리오레우스의 행동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헌터가 제일 처음 향하게 되는 "숲과 언덕" 스테이지였다. 이 숲과 언덕에 리오레우스를 배치, 여러 가지 실험을 시작함으로써 「흐릿했던 헌터와 몬스터의 관계, 즉 헌터에게 있어서 몬스터란 이런 것이라는 이념 같은 게 보이게 된 겁니다」라고 후지오카는 말한다. 근거리 공격과 원거리 공격의 감각적인 차이나, 반대로 리오레우스는 원거리로 포격해 오는 건너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가 등, 헌터측, 몬스터측 양쪽에서 본 가능성을 검증하는 하루하루. 그런 의미에서도 이 『몬스터 헌터』라는 세계관 내에서는 "헌터"와 "몬스터"가 대등한 입장임을 알 수 있다. 헌터가 일방적으로 몬스터를 공격하는 게임이 아닌 것이, 게임으로부터 "비장감"을 지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완성된 리오레우스는 강했다. 체력은 무진장이라고 생각될 정도인데다 공격력도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자기가 여러 가지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나, 그걸 구사하면 어떻게든 쓰러뜨릴 수 있다는 걸 아는 헌터가 보면 실로 딱 좋은 밸런스의 "벽"이 되었다. 그러나 게임을 막 시작한 플레이어가 아무리 상징이라고는 해도 갑자기 리오레우스를 쓰러뜨려야 한다면 어느 정도의 좌절감이 심어지게 될 것인가... 어쩌면 그 순간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태어난 게 "비룡의 입문편"이 되는 몬스터 "얀쿡"입니다」(코지마)

시리즈의 명물 몬스터 얀쿡은 그야말로 『몬스터 헌터』의 세계에 있는 "수렵의 축소판"이다. 수렵에 쓰이는 모든 요소를 도맡은 교사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기본 움직임은 리오레우스로부터 따왔지만, 정말 그대로이면 단순히 "약한 리오레우스"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리오레우스의 움직임을 커스터마이징하면서 얀쿡 특유의 움직임도 집어넣어 나갔다. 그러나 기본은 어디까지나 리오레우스이므로, 비룡이 어떤 움직임을 취하는지 모르는 헌터가 보면 강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래도 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사실 체력은 적은데다 옆으로 쓰러지기 쉬워, 「그때 섬광옥을 사용하면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함정을 사용하면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하는 "어떻게 될 것 같은 상대"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밸런스를 잡기까지의 조정이 매우 힘들어, 코지마는 「처음 만들었을 때의 얀쿡은 압도적으로 강해 아무도 맞설 수 없었습니다. "쪼기" 등 얀쿡 특유의 움직임이 있는데다 스피드가 빨랐기 때문에, 리오레우스의 파워 수치가 들어간 얀쿡은 터무니없이 강했죠」라며 당시를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짓는다. 그래도 그럭저럭 조정해낸 얀쿡은 적당한 "입문용 몬스터"가 되었다. 「얀쿡을 쓰러뜨리면 헌터로 입문할 수 있고, 리오레우스를 쓰러뜨리면 비로소 어엿한 헌터가 될 수 있다... 이런 흐름을 좋아합니다. 뭐랄까, 자화자찬입니다만, 자신의 성장을 실감할 수 있는 느낌이...」(코지마)


『몬스터 헌터 포터블』의 태동


초대 『몬스터 헌터』의 제작은 가경을 맞았다. 그런 어느 날, 아이템의 수수나 벗겨내기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을 때, 「역시 다같이 하나에 몰려드는 요소도 넣고 싶다」고 해서 넣고 있던 "꼬리베기"를 탑재하는데 성공했다고 프로그래머로부터 연락이 왔다. 꼬리베기란 특정 비룡으로부터 꼬리를 잘라내, 거기서 아이템을 벗겨낼 수 있는 사양이다. 당초 격렬한 액션을 제공하면서 하나의 아이템을 여럿이 차지하려고 다퉈 누가 차지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게임 스피드를 떨어뜨리는 요인도 되었기 때문에 탑재하는 것은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몬스터를 몰아넣고 있다는 달성감과, 하나에 여럿이 몰려들어 있는 모습이 매우 재미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 꼬리베기 아이디어만은 남겨두었던 것이다.

탑재되었다는 이야기에 후지오카와 코지마는 두근거리며 모니터 앞에 앉았다. 바로 실험이다. 상대는 암화룡 리오레이아이다. 그러나 리오레이아는 리오레우스의 다른 버젼이라 그 파워는 압도적. 게다가 빨리 꼬리를 베고 싶은 생각에 마음만 앞서 조작이 불안정해진다. 그래도 간신히 싹뚝 꼬리를 베는데 성공했다.

「앗싸! 베었다!! 고 난리였죠 (웃음). 그리고 역시 베고 나면 바로 벗겨내러 가고 싶지 않습니까. 그랬는데...」(후지오카)

베어낸 게 기뻐서 리오레이아의 존재 따윈 깨끗이 잊고 꼬리에 몰려드는 4명의 헌터. 그러나 꼬리가 베여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리오레이아가 그런 어리석은 헌터들을 놓칠 리 없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신이 나서 벗겨내고 있었죠. 그러다 문득 카메라를 돌려 보니, 리오레이아가 험악한 눈초리로 이쪽을 보는 겁니다 (쓴 웃음). 그 순간 쾅! 하고 한발 강력한 브레스... 정말 그때의 리오레이아의 얼굴은 평생 못 잊을 겁니다 (웃음)」(후지오카)

이렇게 해서 『몬스터 헌터』에 대부분의 요소가 탑재되었다. 재미있다는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새로운 게임인 만큼, 누가 플레이해도 재미있다고 할지는 전혀 자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실은 한창 제작중에도 「플레이하기 너무 불편하다」, 「왜 이런 걸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혹평이 사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사내의 크리에이터나 상층부 사람들한테도 테스트 플레이를 받았는데 반응은 반반.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앞서 말한 것처럼 깎아내리는 사람도 적잖이 존재했다.

그때 츠지모토 료조에게 테스트 버젼의 『몬스터 헌터』의 롬이 전달되었다. 『몬스터 헌터』의 플래너였던 키노시타 켄토가 직접 츠지모토에게 롬을 가져온 것이다. 키노시타는 그때 츠지모토에게 게임을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연히 매뉴얼이고 사양서고 뭐고 없다. 그런 가운데 츠지모토는 『몬스터 헌터』를 기동했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이거 재밌는데? 라고 솔직히 생각했죠. 아무런 설명도 받지 않고 플레이했는데, 추억의 냄새와 아날로그 감각이 있어 매우 즐거웠습니다. 그래도 온라인 기반의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초대 『몬스터 헌터』에는 포즈 기능이 없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회복 아이템도 트랩 아이템도 전부 수렵의 흐름 내에서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었죠. 그 긴장감이 좋았습니다. 실패가 전부 자기 탓이 된다는 게 대단히 신선했죠」(츠지모토)

이치노세 야스노리도 츠지모토와 마찬가지로 「이거 재미있다」고 충격을 받은 쪽 사람이다. 본격적으로 플레이하기 시작한 건 『몬스터 헌터』의 발매 후였지만 처음에는 업무상 봤었는데, 도중에 유저의 한사람으로서 푹 빠졌다. 실은 『몬스터 헌터』제작 당시 이치노세의 자리는 『몬스터 헌터』팀 옆이어서 제작 상황을 가끔 들여다 보고 있었다고 한다. 「제 자리 뒤에서 계속 리오레우스와 라오샨론, 아푸토노스를 사용한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품판을 플레이할 때까지 그 3종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몬스터 헌터』에 그 이상의 수의 몬스터가 등장한 것에는 솔직히 놀라움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웃음)」라며 이치노세는 웃는데, 실제로 플레이해보니 「정말 재미있었다」고 진지한 얼굴로 술회한다.


「저는 오프라인으로만 플레이했었는데, 공략집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플레이했죠 (웃음). 리오레우스를 쓰러뜨리기 위해 "1주일 계획"이라는 걸 세워, 월요일은 벌꿀 채취만 하는 날, 화요일은 담쟁이덩굴의 잎만 모으는 날... 이라고 정해, 만전의 태세로 상징에 임한 겁니다. 그 작업이 정말 그 세계에 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즐거웠죠. 나는 지금부터 대형 몬스터에 도전하는 거다! 라며 며칠 전부터 흥분해서 말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이 게임은 대단하다고 솔직히 생각했습니다」(이치노세)

이치노세가 깊이 파고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후지오카는 휴대 게임기의 『몬스터 헌터』를 이치노세에게 맡겨 보자고 생각했다.

「디렉터인 이치노세와 메인 플래너인 에구치가 없었으면 『몬스터 헌터 포터블』은 태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초대 『몬스터 헌터』의 제작이 끝나고 바로 『2 (도스)』와 『G』의 기획이 시작되었는데, 당시의 프로듀서가 동시에 PSP로도 낼 수 없냐고 해서요. 아무래도 제가 전부 다 디렉션하는 건 불가능해서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이치노세의 팀이 시간이 났습니다. 그 후 이치노세 등과 이야기하다가 "이거면 된다!"고 확신했죠」(후지오카)


대히트작 『몬스터 헌터 포터블』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몬헌"이 우리들의 공통언어가 된 날 (5)




게임의 생명이라고도 해야 할 몬스터 "리오레우스"의 완성을 거쳐 단번에 빨라진 『몬스터 헌터』의 제작. 완성된 것은 후지오카 등 제작팀이 이상으로 내건 "궁극의 온라인 대응 액션 게임"이 되어 있었지만, 캡콤 사내에서는 찬반양론의 목소리가 난무한다. 그런 가운데 움직이기 시작한 『몬스터 헌터』의 다음 작품과 휴대 게임기로의 이식. 단순 이식은 하고 싶지 않은 후지오카의 마음을 이어받을 남자로 디렉터 이치노세 야스노리에게 제안이 들어온다.


이대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03년 5월.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한 호텔 방에서 캡콤이 언론용 발표회를 열었다. E3 때 동사가 매년 열고 있는 발표회인데, 필자에게 있어서 이때의 발표회는 긴 기자생활 중에도 특히 인상에 남은 한때였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다, 여기서 처음으로 플레이스테이션 2용 소프트 『몬스터 헌터』의 영상이 상영된 것이다.

그것은 믿기 어려운 영상이었다. 신체보다 큰 무기를 든 캐릭터가 사납게 날뛰는 거대한 몬스터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풀냄새가 감돌 듯한 아름다운 초원에 몸을 감추는 헌터와, 그 기척을 느끼고 웅대한 날개를 펼치고 날아내려오는 비룡... 영상은 게다가 이 게임이 온라인 대응으로, 복수의 동료들과 협력하면서 이들 몬스터를 수렵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가정용 게임기용 소프트는 물론, PC용 소프트나 아케이드 게임에서도 본 적이 없는 듯한 박력 있는 액션이 그 컨셉 영상 속에서 약동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완성도가 높은 영상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필자는 「이건 크리에이터의 이상형을 구현한 것일뿐,  이 퀄리티대로 우리 손에 들어오는 건 아니다」고 은근히 확신한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이때의 심정을 그대로 디렉터인 후지오카 카나메에게 전했다. 「그때의 영상, 허세라고 생각했었습니다」라고. 이 말을 듣고 후지오카는 「그렇겠죠. 그럴 겁니다 (웃음)」라고 씨익 웃으며, 당시를 떠올리면서 노래하듯 말했다.

「저희들에게 있어서는 허세도 뭐도 아니었습니다. 정말 그런 게 돌아가고 있으니 어쩔 수 없잖아? 라는 느낌이었죠 (웃음). 그런 의미에서는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한 자신은 매우 강했습니다. 그래서 "이거 어때?"하는 느낌이었습니다」(후지오카)

이후 『몬스터 헌터』는 2003년 가을에 열린 도쿄 게임쇼에 플레이 가능한 상태로 출품. 전례가 없는 타입의 타이틀인 만큼, 「직접 유저들에게 즐거움을 전달해야 한다」며 개발진 스스로가 회장에 가서 유저들에게 대응했다. 코지마 신타로는 이때의 상황을 돌아보며, 「유저들의 반응도 그렇지만, 동업자들의 반응이 매우 강했던 게 생생하게 기억납니다」라며 흐뭇해한다. 그러나 도쿄 게임쇼 이후엔 도무지 언론에 정보가 나오는 일이 없어, 게임 팬들 사이에서는 「어떤 게임이지?」라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행해진 시책이 코지마가 담당하고 있었던 『몬스터 헌터』공식 사이트에서의 자세한 게임 설명이다. 또한 발매 1개월 전이 되자 그림연극을 집어넣은 게임 소개 페이지 "헌터 일지"를 매주 갱신. 참신한 기획과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 팬들 사이에서 큰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개발진의 「재미를 전하고 싶다」는 강한 마음이 구현된 시책은 유저들에게 친근감을 품게 했다.

참고로 그 매우 특이하고 신기원적인 게임성은 주간 패미통의 크로스 리뷰 점수에서 잘 나타났다. 초대 『몬스터 헌터』는 8, 8, 8, 8로 평균적인 점수였지만, 두번째 작품인 『몬스터 헌터 G』이후엔 10점도 있고 7점도 있는 매우 분산된 점수를 받은 것이다. 확실히 이 게임의 게임성을 감안하면 「최고로 재미있다!」고 절찬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전혀 재미를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분산되는 경향이 있는 점수를 보고 제일 기뻐한 것은 바로 『몬스터 헌터』제작팀 사람들이었다. 코지마가 회상하듯 말한다.

「높은 점수를 받은 것도 물론 기뻤습니다만, 그보다 7점 같은 걸 보고 "정말 우리(『몬헌』)답군요"라며 웃었었습니다.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자부심은 있었습니다만, 만인이 기뻐할 게임은 아니고 "개성이 있는 게임"이라고 자각하고 있었으니까요. 고득점을 한 것도 고맙지만, 7점 같은 것도 정말로 좋아합니다 (웃음)」(코지마)

그리고 플레이스테이션 2용 온라인 대응 액션 게임 『몬스터 헌터』는 2004년 3월 11일에 게임 판매점에 등장한다. 패미통 조사에 의한 발매 첫주의 추정판매개수는 12만 640개. 완전 오리지널 타이틀인 점, 그리고 온라인 대응 게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건 매우 건투했다고 할 수 있는 숫자이다. 「결국, 발매된 뒤에도 사내의 평가는 반반이었습니다. 그래도 절반은 "정말 재밌다!"며 마음에 들어했죠. 영업 담당자나 개발 이외의 사람들도 마음에 들어해, 엄청나게 플레이한 뒤 판매에 힘써 주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플레이해주는 사람들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자세 그대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후지오카)




불이 꺼지지 않게


발매 이래 순조로운 매출을 보여주는 『몬스터 헌터』의 매력은 입소문으로 전파되어, 열광적인 팬을 다수 획득하기에 이른다. 플레이 일기나 공략 사이트가 잇따라 인터넷상에 생겨나, 오리지널 타이틀로서는 이례적인 인기를 보여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몬스터 헌터』는 "팬들이 키운 작품"이라 해도 틀리지 않은 셈인데, 시리즈 작품이 대단히 융성한 작금의 게임업계에서 "해보기 전엔 알 수 없었지만, 해보니 정말 재미있었다"는 오리지널 작품만의 매력은, 자극을 찾고 있던 게임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연료"가 되었다.


그리고 히트하면 당연한듯 「다음 작품은?」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몬스터 헌터』제작팀도 첫 작품의 제작이 끝나고 바로 『몬스터 헌터 2 (도스)』의 기획, 연구에 착수했는데, 후지오카는 이때 당시의 프로듀서로부터 「『2 (도스)』전에 한 작품, 확장판 같은 걸 만들 수 없는가」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게 2005년 1월 20일에 발매된 『몬스터 헌터 G』이다.


스케줄은 빡빡했다. 앞서 말한대로 이미 『2 (도스)』의 기획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한 작품 더 만들게 되면 물리적으로 인력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초대 『몬스터 헌터』로 붙은 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도 빠른 단계에 다음 작품을 내놓는 것이 최선이라는 프로듀서의 주장도 잘 이해가 갔다. 그렇다고 무기나 아이템, 몬스터를 여럿 추가할 정도의 제작기간은 없다. 그러나 그래서는 초대 『몬스터 헌터』를 열심히 플레이하고 있는 팬들이 납득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후지오카 등 제작팀은 과감한 아이디어를 실행한다.


「이미 『2 (도스)』의 기획이 시작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2 (도스)』에 담고 싶었던 몇가지 요소와 시스템상의 새로운 시도를 『G』에 넣었습니다」(후지오카)


그리고 그때 프로듀서로부터 "또 하나의 제안"으로 후지오카에게 던져진 것이 『몬스터 헌터』의 휴대 게임기로의 이식이다. 대응 하드는 플레이스테이션 2와 친화성이 높은 PSP. 그러나 아무래도 『2 (도스)』와 『G』를 디렉션하면서 또 PSP판까지 설계하는 건 아무리 후지오카라도 불가능한 일. 그래서 뽑힌 것이 『바이오 해저드 아웃브레이크』에서 기획을 담당한 이치노세 야스노리였던 것이다. 연재 3편에서 후지오카가 「초대 『몬스터 헌터』의 제작에 꼭 끌어들이고 싶었던 인재」라고 했던 게 이 이치노세인데, 『아웃브레이크』의 제작 시기와 겹쳤기 때문에 이때까지 『몬스터 헌터』제작팀에 가세할 수 없었던 것이다.


『G』의 제작이 가경을 맞고, 『2 (도스)』의 기획구상도 병행해서 착착 진행되고 있었을 때, 이치노세는 『몬스터 헌터』제작팀과 가까운 자리에서 『아웃브레이크』에 이은 새로운 기획의 구상에 고심하고 있었다. 『바이오 해저드 아웃브레이크 FILE.2』의 제작 종료후, 3개월 이상 계속 새로운 기획을 구상하는 매일. 그때 당시의 프로듀서가 이치노세에게 제안했던 것이다. 「『몬스터 헌터』를 휴대 게임기용으로 만들지 않겠나」라고.


사실 제안을 받기 전부터 휴대 게임기로 『몬스터 헌터』를 만든다면 어떤 게 좋을지 생각, 기획서를 만들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건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지만요 (웃음)」(이치노세)


실은 이때의 아이디어는 나중에 『포터블』시리즈의 "트레지씨"(헌터에게 보물찾기 의뢰를 하는 캐릭터)나 『2nd』의 "트레냐씨"에서 살게 되는데, 그건 또 나중 이야기이다.

기획을 열심히 다듬고 있던 이치노세인데, 당시의 프로듀서가 최소한 요구했던 것은 "초대 『몬스터 헌터』의 이식"이었다. 아직 PSP 자체에 소프트가 갖춰지기 전의 시기였기 때문에 어쨌든 이식, PSP라는 하드에서도 『몬스터 헌터』를 할 수 있으면 팬들도 기뻐하고 부담없이 멀티 통신 플레이를 즐겨 주지 않을까... 라는 게 그 이유이다. 또 『G』가 초대 『몬스터 헌터』의 발매로부터 1년 뒤에 발매되어 팬들로부터 호평을 얻음으로써, 화제를 이어나가는 의미에서도 1년에 1타이틀은 뭔가 『몬스터 헌터』를 발매하고 싶다는 로드맵도 생겨나 있었다. 다음 작품은 절대 PSP의 『몬스터 헌터 포터블』이다. 제작기간은 놀랍게도 1년 정도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물리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기획으로 처음부터 만드는 건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치노세는 반발했다. 『G』가 발매된 뒤에 매장에 등장하는 『포터블』이 초대 『몬스터 헌터』의 이식이면 자신은 절대 사고 싶지 않다고. 적어도 『G』를 이식하고 싶다, 그리고 『G』이더라도 아무런 변경점도 없는 단순 이식이면 자신들이 만들 의미가 별로 없다고. 자신들이 한다면 절대 어떤 플러스 알파 요소를 넣고 싶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이치노세와 다른 각도에서 당시의 프로듀서와 후지오카도, 많이 보급이 안된 PSP로 내는 이상 단순한 이식작품으로는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몬스터 헌터』라는 연기를 내고 있는 불을 본격적으로 연소시키는데는 어떤 장치가 절대 필요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PSP의 『몬스터 헌터 포터블』과 플레이스테이션 2의 『몬스터 헌터 2 (도스)』를 연동시킨다는 전대미문의 시책이 가동되기 시작한다. (6편에 계속)







몬헌"이 우리들의 공통언어가 된 날 (6)

  

<U>몬헌 합숙</U>



『몬스터 헌터 포터블』의 제작이 시작되었지만, 당초 주로 기획을 다듬고 있었던 건 이치노세와, 『아웃브레이크』출신의 플래너 두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초대 『몬스터 헌터』를 열심히 플레이했었다고는 해도 이치노세가 이 시리즈의 제작에 종사하는 건 이게 처음. 따라서 아무래도 『몬스터 헌터』의 제작 자체를 숙지하고 있는 플래너가 한사람 필요했다. 그래서 이치노세는 후지오카에게 간원했다. 초대 『몬스터 헌터』때부터 기획의 중추에 있는 멤버가 한사람 꼭 필요하다고. 후지오카도 이치노세의 생각은 잘 알았다. 확실히 『몬스터 헌터』에 정통한 플래너는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후지오카는 결단했다. 『몬스터 헌터 포터블』의 제작팀에 에구치 카츠히로를 넣기로. 뭘 숨기랴 에구치는 초대 『몬스터 헌터』,『G』에서 메인 기획을 맡았던 남자이다. 그 인물을 『2 (도스)』의 제작에서 『포터블』로 이동시킨 데서 후지오카의 범상치 않은 결의를 느낀다. 당시를 돌아보며 후지오카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2 (도스)』제작팀)쪽으로선 기획의 중심 멤버를 이동시키는 결단이었습니다. 초대 『몬헌』,『G』모두 에구치가 기획을 총괄하고 있었으니까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힘듭니다. 하지만 『포터블』을 고려하면 그게 제일 좋다는 생각에서 결단했습니다」(후지오카)

후지오카가 에구치를 이동시킬 결단을 한 배경에 있었던 것이 바로 『2 (도스)』와 『포터블』을 연동시키는 기획이다. 소프트의 연동을 꾀하려면 제작팀 사이도 잘 연결할 수 있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시리즈의 메인 기획이었던 에구치가 『포터블』의 기둥이 되어 주면 양팀의 의사소통도 스무스해질 게 틀림없다... 이때의 결단은 훗날 밀리언 히트작 『몬스터 헌터 포터블 2nd』로 이어지는 셈인데, 아무리 초기 멤버라도 그것까지 예상할 수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그때 그때 자신들에게 주어진 환경 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몬스터 헌터』 제작팀만의 사고방식이 좋은 쪽으로, 좋은 쪽으로 이 타이틀을 이끌어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에구치가 가세함으로써 드디어 『포터블』제작팀의 진용이 갖춰졌다. 그러나 아무리 『2 (도스)』와 『포터블』을 연동시킨다는 구상을 했다 해도 실무가 따르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 되어 버린다. 양팀의 연계를 더 밀접하게 해, 연동에 대한 구체적인 안까지 정해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몬스터 헌터』는 그 게임성으로 인해 무기의 파워나 몬스터의 내구력 조정에 막대한 시간이 걸리게 된다. 그걸 역산하면 먼저 발매하는 걸 계획하고 있는 『포터블』의 제작에 남겨진 시간은 아주 조금 밖에 없다. 일각이라도 빨리 양팀의 의사를 통일, 연동용 기획을 짜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2005년 2월. "몬헌 강화합숙"이 개최되었다. 캡콤은 미에현의 어느 마을에 "카푸콘장(加富根莊)"이라는 휴양시설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 『2 (도스)』와 『포터블』의 주요 멤버가 모여 어떻게 연결을 꾀할지, 또 서로의 타이틀에 어떤 기획을 담을지 구체적인 안을 의논하게 된 것이다. 서로의 기획이 너무나 방대해 1박 2일의 일정은 거의 전부 기획회의에 쓰여져 버렸다. 참가한 누구나가 진지했다. 플래너,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 각각의 파트에서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프레젠테이션, 다른 참가자로부터 동의의 목소리나 격렬한 비판이 난무한다. 비판받으면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게 불가능한 경우는 합숙소에서 회사로 갖고 돌아가 조사, 연구를 했다.

「『2 (도스)』와 『포터블』은 플레이 스탠스의 차이가 대단히 큰데, 그걸 고려하지 않고 서로 망치게 되면 차마 눈뜨고 못 봅니다. 또 『포터블』 쪽이 먼저 발매되는데다 플레이 템포도 거치기에 비해 빨라지기 때문에, 신규 아이템이나 무기를 전부 등장시켜 버리면 『2 (도스)』에서 플레이할 게 적어져 버릴지도 모르죠. 그런 것도 염두에 두면서 하나 하나 기획을 해 나갔습니다」(이치노세)


이 합숙을 거침으로써 『2 (도스)』 팀, 『포터블』팀 모두 자신들이 하고 싶은 걸 알게 되어 제작에 탄력이 붙었다고 후지오카는 말한다. 지금까지의 몬스터와는 격이 다른 "고룡"을 어떤 존재로 할것인가, 『2 (도스)』와 『포터블』을 오가는 몬스터는 만들 수 없는가 같은, 훗날 시리즈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아이디어도 이걸 계기로 설정되어 가게 되었다고 하니까, 얼마나 이 합숙이 의의 있는 것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포터블』의 제작에 기세가 붙었다. 제작기간이 짧아 하고 싶은 걸 전부 담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치노세 등은 『G』에는 없었던 『포터블』만의 신요소를 기획, 잇따라 구체화해 간다. 그것이 "아일 키친"이나 "농장" 같은 요소인데, 이들을 가리켜 후지오카는 「『포터블』팀은 일부러 가시밭길을 택했습니다」라고 감탄을 담아 말한다.

「예를 들어 『포터블』은 코콧토 마을이라는 마을에서 생활이 완결되는데, 이것도 원래는 『G』의 거리를 기반으로 이식하는 편이 구상하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되면 아이템을 팔고 있는 장소에 가는데 한번 로딩이 들어갈 필요가 있는 등, 휴대기에서 플레이하기에는 조금 불편했죠. 그래서 마을에 모든 요소를 넣어 처음부터 다시 만든 겁니다. 하지만 그게 플레이하기 편하고 중단하기 편한 환경의 구축으로 이어졌죠. 이게 『포터블』시리즈가 단번에 퍼진 요인 중 하나라고 봅니다」(후지오카)


또 PSP는 애드혹 모드만이 아니라 무선 랜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즉 마음만 먹으면 주위에 있는 친구들만이 아니라 전국의 불특정 다수의 유저와도 플레이할 수 있게 설계할 수 있는 셈인데, 『포터블』시리즈에서는 이 요소는 깨끗이 삭제되어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츠지모토 료조는 이렇게 말한다.


「막상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되면 휴대 게임기는 거치기에 비해 아직 온라인 환경이나 인터페이스 등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도 많아 문턱이 높아지죠. 그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휴대기에서 승부할 수 있는 건 역시 애드혹 모드였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특화시키기로 했습니다」(츠지모토)

츠지모토는 이때 서브프로듀서라는 입장에서 『2 (도스)』의 제작을 지원하면서, 온라인 대응 레이스 게임 『아우토모델리스타』의 제작에서 얻은 온라인 관련 노하우를 살려 『포터블』에 담고 싶던 애드혹 모드를 이용한 파티 플레이에 맞춰 기획요소나 다운로드 퀘스트의 구체화를 위해 활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프라스트럭쳐 모드(인터넷에 접속해 전국의 유저와 교류할 수 있는 기능)로 멀티 플레이를 실현하는데 노력을 기울일 바엔 다른 기획 내용을 더 철저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인프라 대응으로 하면 아무래도 설정이 번잡해지지 않습니까? 그러면 손쉽게 플레이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과 크게 모순되게 되죠. 통신환경이 안 되는 사람도 손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요소를 추구하기로 『포터블』팀은 결론지은 겁니다」(코지마)

이렇게 해서 완성된 PSP용 소프트 『몬스터 헌터 포터블』은 2005년 12월 1일에 매장에 등장한다. 그 매상은 초대 『몬스터 헌터』, 『몬스터 헌터 G』도 상회하는 것으로, 학생층에 조용한 "『몬헌』붐"을 불러 일으킨다. 이 사실이 『몬스터 헌터』라는 소프트가 하나의 브랜드로써 확립되어, 더 폭넓은 연령층으로 유저가 확대된 것을 제작팀에 실감케 했다.

그렇다, 쐐기를 박은 것이다. 다음 회에는 드디어 PSP 첫 밀리언 히트 소프트 『몬스터 헌터 포터블 2nd』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7편에 계속












"몬헌"이 우리들의 공통언어가 된 날 (7)


1년에 한 작품이라는 빠른 페이스로 발매되는 『몬스터 헌터』시리즈의 신작. 그때마다 판매개수는 점점 늘어 간다. 그리고 2005년 12월 1일, 시리즈 첫 PSP용 소프트 『몬스터 헌터 포터블』발매. 휴대 게임기용으로 최적화된 『몬스터 헌터』에 팬들은 쇄도, PSP의 하드판매대수도 끌어올리는 대히트를 기록한다. 이에 따라 드디어 밀리언 히트 소프트 『몬스터 헌터 포터블 2nd』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포터블 2nd』, 시동!


2005년 12월 1일에 발매된 PSP용 소프트 『몬스터 헌터 포터블』은 착실히 판매개수를 늘려 나갔다. 초대 『몬스터 헌터』때부터의 열광적인 팬들은 물론, 플레이하고 싶었지만 집에 온라인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아 손을 내밀 수 없었던 사람들도 이때다 싶은 듯이 『포터블』에 달려 들었다. 당연히 소프트만이 아니라 하드의 판매대수도 서서히 늘어, 그때까지 닌텐도 DS가 압도하고 있던 휴대 게임기 시장에서, PSP도 싸워나갈 수 있는 하드라는 존재감을 보여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포터블』은 특히 학생층에 인기를 얻었다. 초대 『몬스터 헌터』, 『몬스터 헌터 G』로 넓어진 유저의 층이 손쉬운 휴대 게임기판의 등장에 의해 학생층에까지 "내려온" 듯한 현상이었다. 이걸 가리켜 후지오카 카나메(『몬스터 헌터』시리즈 디렉터, 세계관 감수)는 「『G』때 학생들이 달려든 느낌이 있었는데, 이 『포터블』로 그 느낌이 확실해졌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히트에 따라 곧 『포터블』다음 작품의 기획이 시작된다. 프로듀서에 취임한 것은 츠지모토 료조. 『몬스터 헌터 2 (도스)』에서 서브프로듀서를 맡았고, 『포터블』에서 애드혹 모드와 다운로드 퀘스트의 실현에 진력한 "현장 출신의" 프로듀서이다.


2005년 연말, 츠지모토가 프로듀서로서 수면하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에 호응해, 이치노세 야스노리를 디렉터로 한 『몬스터 헌터 포터블 2nd』 제작팀도 활동을 개시했다. 그렇지만 마침 그 무렵은 플레이스테이션 2용 소프트 『몬스터 헌터 2 (도스)』의 제작이 가경을 맞고 있었기 때문에, 『포터블』팀 사람들도 『2 (도스)』의 마무리 작업에 차출되어 있었다. 결국 『2 (도스)』가 발매되는 2006년 2월까지 『2nd』는 제작팀으로써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멤버가 갖춰져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건 2006년 3월 이후가 된다.

프로듀서인 츠지모토가 계획한 『2nd』의 발매예정시기는 2007년 2월. 그 스케쥴을 지키려면 『2nd』의 제작에 들일 수 있는 시간은 1년도 안 되게 된다. 쉽게 쓰고 있는데 이건 터무니없는 일이다. 『2nd』는 『2 (도스)』를 바탕으로 한 타이틀이지만, 단순히 『2 (도스)』를 이식하는 것만으로도 심상치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2 (도스)』는 플레이스테이션 2에서의 『몬스터 헌터』시리즈의 집대성으로 만들어진 타이틀이기 때문. 수렵의 무대가 되는 필드가 전부 새것으로 바뀐데다 "고룡"의 추가와 새로운 무기 카테고리도 여럿 탑재되어 있다. 즉 데이터량이 보통이 아닌 게임인 것이다. 이걸 PSP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몬스터 헌터』라는 게임은 성격상 무기의 파워나 몬스터의 체력 같은 부분의 조정에 상당한 시간을 들인다. 또 이 시리즈는 4명까지 같이 사냥하러 갈 수 있게 설계되어 있어, 디버깅을 하는데도 늘 "x4"가 따라다니는 것이다. 디버깅을 위한 인재와 시간의 확보를 감안하면, 여름 정도까지는 어지간한 요소는 끝내 테스트를 시작할 수 있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제작에 들일 수 있는 시간은 사실 반년도 안 되었던 것이다. 『2nd』제작팀의 고투가 시작되었다.

  



원시의 비룡





『2nd』를 제작하면서 이치노세 등은 우선 전작 『몬스터 헌터 포터블』의 반성점을 철저히 털어내는 작업을 했다. 얼핏 보면 매우 완성도가 높고 휴대 게임기로 플레이하기에 딱 맞는 밸런스였던 『포터블』이지만, 만든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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